잠25:9-15

말은 중요한 것입니다. 말로 사람이 세우기도 하고, 무너지게도 하죠. 본문을 보면서 말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를 배울 수 있는데요.

1> 남의 비밀은 누설하지 말라고 합니다.

9=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논쟁이 생겼을 때 변론만 하고, 그 사람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고 하죠. 남의 비밀을 지켜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면 어떻게 된다고 하죠?

10=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남의 비밀을 누설하면 두 가지 결과가 생깁니다. 첫째는 듣는 사람들이 꾸짖는다고 합니다. “굳이 그런 말을 왜 하나? 그럴 필요까지 있나?”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꾸짖는다는 겁니다. 둘째는 역풍을 당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칭찬이 아니라, 악평을 들을 수가 있다는 거죠. 인격을 갖춘 사람은 비밀을 누설하는 사람을 볼 때 겉으로는 그냥 들어주더라도, 속으로는 “저 사람은 가까이하면 안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남의 단점을 잘 누설하는 사람은 나의 단점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기 때문이죠. 세상에 단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말이죠.

2>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합니다.

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아로새긴 은쟁반의 금사과”라는 말은 아주 가치 있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죠. 시의적절한 말은 무엇보다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을 적절하게 하고, 예의 바르게 해야 합니다. 덕을 끼치는 말을 하고,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할 때 상대의 마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책망을 해도 슬기롭게 해야 합니다.

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혹시 책망할 일이 있을 때는 아주 슬기롭게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한편, 슬기로운 책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청종하는 귀”입니다. 잘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입’과 ‘청종하는 귀’가 조화를 이룰 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함부로 책망하고, 말을 툭툭 던지면 관계는 깨어지고, 멀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거짓으로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14=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무엇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약속을 안 지키면 비 없는 구름과 바람처럼 허무한 인생이 된다는 말씀이죠. 그러므로 쓸데없는 자랑이나, 약속은 금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바리새인들을 싫어하셨죠? 의롭게 살려는 태도를 싫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것을 싫어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모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말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의 흉을 보는 것’과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좋은 것이 아니죠. 자랑은 할수록 거짓말이 늘게 된다고 하죠. 처음에는 하나 한 것을 나중에는 둘을 했다고 하면서 허풍과 거짓말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랑을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5> 말을 급하게 하지 말고, 인내하라고 합니다.

15=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참았다가 적절하게 하는 말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다.”라는 말은 온유한 말이 더 강하다는 뜻이죠. 마리아가 잉태했을 때 요셉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으려고 했죠. 요셉이 어떤 사람이어서 그랬다고 하죠? 요셉은 의인이라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요셉이 떠들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리아는 돌에 맞아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이라서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조용히 해결하여 마리아의 파멸을 막아주었죠. 얼마나 침착하고, 신중하였습니까? 그러므로 속단하거나, 급하게 말하지 말고,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은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이고, 은혜로운 말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회성은 있지만 산만해서 성적이 바닥인데 한번은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가 있었는데도 맨날 놀다가 마지막 날 밤에 독후감을 쓰려고 하니까 되겠어요? 책을 읽지 않았는데요. 그렇지만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써서 발표했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과 학생들이 이 학생의 이야기에 모두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A+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숙제 밑에 선생님은 이런 코멘트를 써주었습니다. “너는 책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했지만 놀라운 스토리텔러의 재질이 있구나! 계속 노력해 봐라.” 그래서 용기를 얻고, 자기의 재능을 살려서 나중에 유명한 영화 작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습니다. 많은 실수를 범했고, 약점도 많았습니다. 베드로는 성질이 급하고, 소리도 컸습니다. 도마는 비꼬는 말이 많은 의심쟁이였습니다. 마태는 매국노의 대명사였던 세리였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하셨는데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세상의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현재의 부족한 모습만 보신 것이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바라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말을 어떻게 하느냐? 이것은 중요합니다. 날마다 지혜롭게 말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