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12:13-14

전11:7=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오늘도 살아있어서 해를 보고, 달을 보고, 옆 사람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죠. 솔로몬은 우리에게 이런 즐거움을 주셨다고 합니다.

8=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인생을 즐기며 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항상 즐거운 일만 있습니까? 아니죠. 슬픈 일도, 근심되는 일도 있습니다. 태어나는 시간부터 걱정과 근심이 있습니다. 8절에서는 “그러나 캄캄한 날이 많으리니 그날을 생각할지로다.”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10절을 보면, “근심을 떠나게 하라”고 하죠. 여러분! 근심거리가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근심이 떠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근심에는 원인이 있는데 왜 근심하게 될까요?

1> 죄 때문입니다.

창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은 다음부터 걱정과 근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창4장을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근심하죠. 가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이 말은 가인의 비통한 심정을 표현하죠. 이처럼 죄가 근심거리를 주는 것입니다.

2> 재물 때문입니다.

마19:22=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가니라.”

한 청년이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예수님께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하셨죠. 그러자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근심과 소유는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소유가 많아지면 근심도 많아지게 되죠. 아예 없으면 예수님을 따르기가 쉽죠. 그냥 따라나서기만 하면 되잖아요. 뭔가 좀 있으니 근심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근심은 반비례합니다. 믿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근심은 줄고, 믿음이 떨어질수록 근심은 커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근심을 떨쳐버리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사랑하고, 믿음을 떠나면 근심도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3> 가족관계 때문입니다.

창26:34-35절을 보면, 에서가 불신 결혼을 하자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는 에서 때문에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17:21=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잠17:25=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에서와 같은 아들이죠. 자식 때문에 근심하는 부모, 남편 때문에 근심하는 아내, 아내 때문에 걱정하는 남편, 형제 때문에 근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족이 좋지만, 근심거리를 줄 때도 많습니다.

4> 지식 때문입니다.

전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어떤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 중에 고등학교 졸업 이하보다 대학교 졸업 이상이 더 많고, 중산층 이하보다는 그 이상이 더 많고, 촌사람보다 도시 사람에게 불면증이 더 많다고 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학력이 높고, 세상 경험이 많을수록 고민이 많다는 거죠. 어떨 때는 모르는 것이 나을 때가 있죠.

이런 근심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까요?

1>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근심은 죄와 관계가 있습니다. 집을 떠났던 탕자의 근심이 언제 해결되었습니까? 집으로 돌아왔을 때죠. 삭개오도 토색한 것을 갚음으로 근심이 물러갔습니다. 회개하면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2> 행복의 조건을 하나님께 두는 겁니다.

돈에 행복의 조건을 두면 근심이 떠나지 않습니다. 소유와 근심은 비례하기 때문이죠. 사람에게 행복의 조건을 두어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사람은 사람이죠.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근심이 사라집니다.

벧전5:7=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시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께 맡기고, 행복의 조건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걱정할 필요가 사라집니다. 솔로몬은 전도서를 마치면서 인생의 본분이 무엇임을 깨닫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깨달은 것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 없으면 모든 것이 허사라는 겁니다.

전1:2절에서 “헛되다”라는 말이 5번이나 나오고, 전도서 전체에서는 “헛되다”란 말이 37번 나옵니다. 하나님이 없는 모든 것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고라는 겁니다.

13-14절에서 솔로몬은 3가지 중요한 것을 말하죠.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기 때문이죠.

둘째,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고 합니다.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알고,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전도서의 결론이죠. 로마의 어느 황제는 인생을 엄숙하게 살아가기 위해 매일 아침 신하가 문안할 때마다 이렇게 인사하도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폐하!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황제는 이런 아침 인사를 통해 늘 죽음을 인식하고 지혜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어느 철학자는 “짧고, 허무한 세상에 우리가 태어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영원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이다.” 그렇죠. 세상에는 허무한 것들이 많습니다. 솔로몬의 말처럼 헛되고, 헛된 것이 세상살이죠. 그리고 짧은 인생을 살다가 갑니다. 그러나 이런 허무를 통해서 영원의 의미를 배우게 되죠. 허무를 경험함으로 주님 안에서 누릴 영원의 값어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