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3:1-8
본문을 보면 “때”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요. 28번 나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가리키는 말이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면 14가지의 기한과 때를 말하고 있는데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1> 사람의 생명을 사람이 주관할 수 없다는 겁니다.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날 때와 죽을 때가 있으며” 이 말씀은 사람의 생명을 말하고, “심을 때와 뽑을 때”라는 말씀은 식물의 생명을 말합니다. 사람이나 동물, 식물의 생명을 누가 주관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죠. 우리가 그 수명을 마음대로 할 수 없죠.
2> 흥망성쇠도 사람이 주관할 수 없다는 겁니다.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사람이 주관한다면 누가 망하는 길을 택하겠어요? 다 흥하고, 성공하는 쪽을 택하겠죠. 병든 사람을 의사가 고치기도 하지만, 의사가 고치지 못하는 것도 많지 않습니까? 죽어가는 생명은 의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인생의 희노애락을 사람이 주관하지 못합니다.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우리에게 좋은 일만 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슬픈 일도 생기고, 좋은 일도 생기는 겁니다. 이걸 마음대로 주관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죠. 그래서 두 가지를 다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안 좋을 때를 대비해야 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좋은 일이 올 것을 믿어야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세요. 단3:17-18절인데요.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낼 수도 있고, 안 건져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겠다는 거죠. 얼마나 좋은 믿음입니까? 우리는 두 가지 가능성을 다 생각하고, 기쁠 때는 찬송하고, 슬플 때는 기도하고,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4> 용도를 사람이 주장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5절 말씀인데요. 집을 지을 때는 돌이 필요하여 먼 곳을 가서라도 돌을 구해 오지만, 집을 짓지 않을 때는 있던 돌도 귀찮은 것입니다. 필요가 없는 곳에 있으면 골치가 아프죠. 그러니 “돌아! 귀찮게 왜 하필 여기에 있느냐? 저리 가라!”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5> 잃고 찾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겁니다.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새것을 찾아서 기쁠 때가 있지만 소중한 것을 잃어서 슬플 때가 있죠. 우리는 이별과 사별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잖아요. 이것이 우리 인생이 아닙니까?
6> 사랑, 미움, 전쟁, 평화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잘 통제하지 못하죠. 그래서 분란이 일어나는데요. 통제가 잘 된다면 이 땅에는 사랑과 평화만 가득하겠죠. 마음대로 안 되니까 싸움과 전쟁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요?
1> 현실에 충실해야 합니다.
본문에 ‘때’라는 단어가 28번 나온다고 했는데요. 긍정적인 때가 14번, 부정적인 때가 14번입니다. 이렇게 좋은 때와 어려운 때가 교차한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떤 일을 만나든 현실에 충실해야죠.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죠? 여름에는 “더워죽겠다.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겨울에는 “추워죽겠다. 언제 여름 오지!”라고 하죠. 어떻게 해야죠? 여름에는 여름을 즐기며 감사하고, 겨울은 겨울이어서 감사해야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여름에는 더워야 곡식이 자라고, 겨울에는 추워야 해충이 죽지 않습니까? 필요해서 여름도, 겨울도 있죠. 필요 없는 것을 하나님이 왜 주셨겠어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고, 현실에 충실해야 합니다.
2> 정직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17=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고 하죠.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영국 격언이죠. “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이발하라. 일주일을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결혼하라. 한 달을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말을 사라. 일 년을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새집을 사라. 그러나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정직한 사람이 되어라.” 정직하게 살면 평생이 행복하다는 건데요. 반대로 정직하지 못하면 어떨까요? 머리가 아프죠. 계속 속여야 하니까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외투를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까 그 안에 보석이 들어있었습니다. “야 횡재했구나!” 좋아했는데 하룻밤을 자고, 이틀 밤을 자는데 불안합니다. 내가 이것을 가져도 되나? 마음이 괴로운 겁니다. 그러다가 랍비를 찾아가서 물어봅니다. “외투를 샀더니 보석이 안에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랍비는 “당신이 외투를 샀지, 보석을 산 것이 아니니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겠죠.”라고 하면서 “돌려주러 갈 때 반드시 아들을 데리고 가시오. 그러면 당신은 보석보다 더 크고 귀한 보석을 얻게 될 것인데 그 보석의 이름은 바로 정직이라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까요? 우리보다 죄를 덜 지어서 그렇습니까? 그는 간음죄에다가 살인죄까지 지었습니다. 그러나 정직했습니다. 정직하게 회개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3> 영원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우리에게는 이 땅이 전부가 아니죠. 그래서 땅만 바라보며 사는 것은 허무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국과 영원을 바라보고 살아야 허무하지 않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현재에 충실하며, 정직하게 살고, 영원을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고 살므로,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시는 날에 큰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