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23:13-17

23장에는 다윗을 도왔던 용사들이 나오는데요. 요셉밧세벳(8), 엘르아살(9), 삼마(11)를 비롯하여 37명이 나옵니다(39). 이들은 다윗의 진영을 이끌었던 최고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세 명의 용사들이 나오는데요. 이들은 다윗에게 정말로 헌신적인 사람들이죠. 본문에는 이들의 헌신적인 행동이 기록되어있는데 헌신적인 사랑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 용사는 다윗을 위해 어떤 일을 하였습니까?

1> 다윗의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14-15절을 보면 다윗이 철이 없습니다. 자신의 군대는 산성에 있고, 블레셋 군대는 베들레헴에 있어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데 다윗이 뭐라고 하죠?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을 먹고 싶다. 누가 나로 저 물을 마시게 할까?”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이렇게 말하면 부하들의 가십거리가 될 만한 말이죠. “왕이 이상해졌어! 제 정신이야?”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세 장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허물거리를 가십거리로 삼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장수들이죠.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일 때는 “저 허물을 덮으라고 나를 여기에 두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동네방네 소문을 내는 것보다 훨씬 낫죠.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는 남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 자기의 부족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것이 교만이죠.

그런데 대개 사람들을 보면 교만할 내용이 별로 없는 사람이 교만하고,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이 남을 보고 말을 안 듣는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결함이 많은 사람이 남을 잘 비판하고, 교만한 사람이 교만한 사람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No”라는 말을 할 구실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성숙한 사람은 “Yes”라는 말을 할 구실을 찾는다고 합니다. 무조건 “예스맨”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예스” 하면서 남을 격려할 줄 아는 “예수맨-예수의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남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들어주고, 양보하면서 보다 큰 것을 얻는 삶이 바로 십자가의 삶입니다. 이런 삶을 추구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다윗을 위하여 조용히 행동하였습니다.

이들은 다윗의 말을 듣자 물을 구하러 떠났죠. 아둘람 굴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50리인데요. 왕복 100리 길이죠. 물을 얻기 위하여 적진으로 들어갔습니다. 희생을 각오하고 떠난 것입니다. 이들은 다윗을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전혀 논리가 맞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죠. 그리고 그 사랑을 조용히 실천했습니다. 이들은 “왕이여!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아무리 다윗이 물을 먹고 싶어도 갔다 오라고 하겠습니까? 그들은 말없이 물을 얻으러 가죠. 그 길은 죽음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동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조용히 행동하는 거죠. 말만 하고, 행동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교회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항상 있죠. 참여하는 사람이 있고, 방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방관만 하는 사람일수록 말은 더 많이 하죠. 그러나 참여하는 자가 복을 받고, 은혜를 받습니다. 여러분, 들러리인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야 좋지, “들러리”가 되면 좋겠어요?

교회생활에서 주인공이 되지는 못해도 중심인물이 되기를 힘써야 하는 겁니다. 이 말은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조용히 일하는 신자가 되라는 말이죠.

3> 다윗에게 소중한 것을 드렸습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들어가 우물물을 길어다가 다윗에게 드렸습니다. 그러니 그 우물물은 자기들의 목숨이었죠.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물을 길어왔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물을 받고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그냥 홀짝홀짝 마셨습니까? 아니죠.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하죠? “이 물은 생명을 돌보지 않고 갔던 사람들의 피와 같습니다. 제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다윗이 또한 훌륭한 사람이죠. 부하들이 그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을 때 다윗의 갈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깨끗이 해소되었을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서 다윗도 위대한 사람이지만 세 용사도 정말로 위대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마지막 부분을 보세요.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이들을 칭찬하시는 말씀이죠.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칭찬을 듣는 헌신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