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39:1-14
다윗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체험하고, 찬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특히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속속들이 알고 계시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 시139편에서 다윗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생각과 길과 눕는 것과 모든 행위, 혀의 말,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고백하죠. 행동, 말, 심지어 생각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몰래 하는 행동은 아무도 알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죠. 우리의 말도 내뱉는 순간 사라지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누가 보시고, 누가 들으시죠? 하나님께서 다 보고, 다 들으시죠.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인생을 감찰하십니다.
1=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감찰한다.’라는 말은 샅샅이 뒤지고, 검증하여 찾아낸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광산에서 보석을 찾을 때 쓰는 말인데요. 이렇게 하나님께서 살피신다면 아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심으로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모든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하늘에 올라가도, 음부에 내려갈지라도, 아침 햇빛을 타고 신속히 바다 끝을 갈지라도, 하나님을 피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모든 곳에 계신다는 말을 신학적인 말로 “하나님의 편재성”이라고 합니다. 요나가 하나님을 피하려고 했지만 피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죠.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니까 피할 수 없습니다.
3>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13-14=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인체의 신비는 의사들도 놀라지 않습니까? 신묘막측합니다. 스펄전 목사가 이런 말을 했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보기 원하십니까? 멀리 갈 것 없이 당신의 몸을 보시오. 인간의 신체보다 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4> 모든 것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정녕히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하지만, 악은 미워하시고, 증오하시죠. 그래서 다윗도 하나님을 닮아서 악한 사람들을 미워한다고 하죠.
21=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한하지 아니하나이까?”
다윗도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서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 하기로 결심하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한다고 합니다. 이런 결심은 좋은 결심이죠. 생각을 잘하고, 결심도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코앞에 두고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신부가 있었답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목사님이 신부에게 “그대는 이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겠습니까?”라고 묻는데 신부는 더듬거리며 “잘 모르겠어요. 아직 마음을 정할 수가 없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이 결혼은 무효입니다.”라고 선포하자 결혼식과 피로연이 취소되었고, 하객들은 돌아가고, 많은 돈을 들여 준비한 음식도 버리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신부가 마음을 정하지 못해서죠. 여러분, 믿음도 결단 아닙니까? 하나님을 닮으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파스칼은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요.
첫째는 하나님에게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유식하고, 고상해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전지전능하시고, 가장 위대한 지식을 가진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하고,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찾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찾기는 하는데 만나지 못한 사람이죠.
셋째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다윗과 같은 사람이죠. 다윗은 어디를 가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사람을 네 가지 유형으로 말했습니다.
첫째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인데 이런 바보는 피하라고 합니다.
둘째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단순하니 가르치라고 합니다.
셋째는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자고 있으니 깨워주라고 합니다.
넷째는 알고 있고,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니 이런 사람을 따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다윗처럼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현명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