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3:1-4
시123편은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내용을 볼 때 본 시는 바벨론 포로 말기나, 혹은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의 훼방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느4장을 보면 포로에서 돌아온 느헤미야를 사람들이 세 가지 방법으로 반대하였습니다.
1> 조롱하였습니다.
느4:1절을 보면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절에서는 “이 미약한 유다사람들이 하루에 하려는가” 3절은 “저들이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리라.”라고 하며 비웃었습니다. 얼마나 야비한 소리입니까? 누가 하루에 성벽을 재건한다고 했습니까? 그런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을 만들어 비난하고 조롱하는 겁니다.
2> 조직적으로 반대하였습니다.
느4:7-8=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야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같이 분을 내고,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반대자들이 조직적으로 음모를 꾸미죠. 산발랏과 사마리아 사람은 유다의 북쪽, 아라비야 사람들은 남쪽에 있는 사람들이고, 도비야와 암몬 사람들은 유다의 동쪽에 있는 사람, 아스돗은 서쪽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죠.
3> 나쁜 소문을 내었습니다.
느4:11=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이런 소문으로 두려움을 안겨다 주죠. 그런데 소문에는 특성이 있습니다. 적과 가까운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린다는 것입니다.
느4:12= “그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고하기를”
여기 유다 사람들은 적들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적들과 인접하게 살다 보니 그들을 닮죠. 그러니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가? 이것은 중요하죠. 그리고 소문은 항상 과장이 되죠.
느4:12=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 와야 하리라.”
소문이 10번씩이나 반복되면 그것이 사실처럼 들릴 수도 있죠. 열 번을 계속 말하면 진짜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반대와 소문이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느4: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바로 낙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 누구시죠? 하늘에 계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여러분, 힘이 들 때 누구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힘을 얻어야 합니다.
고후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바울은 고후1-11절에서 “위로”라는 단어를 10번 썼는데요.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하죠. 바울은 아시아에서 많은 환란을 받았습니다. 그런 바울을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힘을 주셨죠.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위로”라는 말은 “파라클레시스”라고 하는데요. “곁으로 부른다.”라는 말입니다. 곁으로 불러서 함께하신다는 말씀이죠. 영어로는 위로를 “comfort”라고 하는데요. 이 단어는 “com=함께”, “fort=힘”이란 말의 합성어죠. 힘을 가진 사람이 돕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옆에 계셔서 힘이 되어주시고, 후원해 주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최고의 위로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해야 합니다.
2=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종은 모든 것이 주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몸짓 하나하나에 민감한 것입니다. 이런 심정으로 시인은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있죠. 오늘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긍휼을 사모해야 합니다.
3=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심령에 넘치나이다.”
여기서 멸시하는 자는 사마리아 사람을 가리키는데 시인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죠. 공평하게 처리해 주시는 것입니다.
느4장에서 느헤미야도 하나님께 기도하죠. 4-5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두지 마옵시고,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느헤미야의 마음은 흥분되어 있는데요.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반대와 조롱을 당할 때 문제를 사람에게 가지고 가지 말고, 하나님께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