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34:1-3
본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내용인데요.
1=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이 구절을 보면 밤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상9:33=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을 하지 아니하였더라.”
물론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자”들은 찬송하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죠. 왜냐하면 “여호와의 모든 종들”이란 칭호는 제사장들에게도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절은 성전에서 일하는 모든 자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기 “손을 든다.”라는 말은 기도하는 것을 나타내지만 찬양을 드리고,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도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너희에게 복을 주실지어다.”
1-2절은 하나님을 향한 송축이 주제인데 3절은 사람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며 밤낮으로 찬송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죠. 특히 밤에 드리는 예배와 찬송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죠. 새벽도 물론 마찬가지라고 믿습니다. 모든 사람이 잠을 자는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이 정성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겁니다.
예수님도 새벽에 하루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셨죠. 바울과 실라도 밤에 찬송하고, 기도했을 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보게 되었죠. 밤이나 새벽에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한국의 어느 시골교회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목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를 입었는데요. 어느 날 주일예배를 마치고, 차로 교인들을 데려다주다가 정신장애가 있는 무당의 손녀딸을 치었습니다. 사실은 치었다기보다 아이가 뛰어들었죠. 그러니 무당집에서 몸도 성하지 못한 목사가 사람을 치었다고 하면서 난리가 났죠. 큰일이 났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방법이 없죠.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이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더 큰 장애를 입지 않도록 해달라고, 그리고 수천만 원의 합의금을 위해 기도하는데요. 아이가 넉 달 만에 퇴원했는데 무당이 합의금을 안 받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정신장애가 있던 아이가 교통사고 후에 정신이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도 믿고, 친구들이 모아준 보상금은 교육관 건축자금에 보탰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전화위복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2> 축복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너희에게 복을 주실지어다.”
아무나 축복을 선포할 수는 없겠죠. 복을 선포하는 사람은 제사장들이죠. 성전을 떠나는 백성들을 향하여 제사장들이 복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그런데 어디에서 복을 주신다고 하죠?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고 하죠. 여호와의 집이죠. 그러므로 다른데 가서 복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되고, 어디로 와야 복을 받습니까? 성전에 와서 섬기고, 기도하고, 찬송할 때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122: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예루살렘에 무엇이 있습니까? 성전, 여호와의 집이 있는 곳이죠. 그러므로 성전에 나와서 예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밤낮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고 살 때 하나님은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인데요. 농촌에서 성실하게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동쪽으로 12km를 가면 큰 나무가 있는데 나무를 베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그 나무를 찾아가서 베었는데요. 나무가 쓰러지면서 나무에 있던 새 둥지를 발견했는데 거기에 새 알 두 개가 나왔습니다. 한 알에서 새끼 새가 나오더니 “다른 알을 까면 금반지가 나올 것인데 반지에게 소원을 빌면 뭐든지 이루어진다.”라고 하면서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금반지를 꺼내어 놓고, 무슨 소원을 빌까 의논하였죠. 집을 달라고 할까, 소를 달라고 할까, 땅을 달라고 할까, 돈을 달라고 할까를 의논하다가 그런 것은 열심히 일하면 얻을 테니 금반지를 보관하고 열심히 일이나 하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금반지를 싸서 옷장 속에 넣어두었죠. 소원을 들어달라는 요구보다 금반지가 있다는 사실에 든든해하며 희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힘든지도 모르고 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는데 그러니 땅도 사게 되고, 논도 사고, 소도 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큰집도 장만하고, 부자가 되었고, 아들 삼 형제도 얻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소원을 들어주는 금반지보다 더 귀한 것은 희망과 사랑, 성실과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들들과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는데요. 부모로부터 “금반지 이야기”를 들었던 아들 삼 형제는 금반지를 꺼내서 무슨 소원을 빌까를 의논하다가 큰아들이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는데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내겠냐? 부모님도 소원을 빌지 않고, 희망 속에서 행복하게 사셨는데 우리도 소원을 빌 필요가 있겠느냐? 금반지 때문에 서로 갈라질 것이 아니라, 금반지를 그냥 부모님의 묘에 묻어버리고, 우리도 부모님처럼 희망 속에서 살자! 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모두 찬성하고, 금반지를 부모님의 묘에 묻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과 희망을 하나님께 두고 산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