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33:1-3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형제가 잘 지내면 이렇게 좋다는 거죠. 얼마나 선하고, 좋은지 탄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죠. 이렇게 연합하는 것은 2-3절에서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라고 하죠. 서로 연합하는 것이 이렇게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서로 연합할 수 있을까요?

1> 서로 용서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의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는 거죠.

2> 서로 이해하는 마음과 동정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려고 하는데요. 그래서는 하나 되는 것이 쉽지 않죠. 함께 살기 위해서는 아량을 베풀어야 하는 겁니다.

벧전3:8=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이런 마음이 있을 때 함께 살아갈 수가 있죠.

3>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이용당하면 기분이 나쁘겠죠. “토사구팽”이란 말이 있는데요. 단물을 빼 먹으면 차버린다는 건데요. 얼마나 속이 상하는 일입니까?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너 죽고, 나 죽자”라는 말도 있죠. “내가 안 될 바에는 너도 안 되어야지!” 이러면 되겠어요?

유대인들은 “나도 살고, 너도 살자!” 이런 마음으로 사업을 한다고 하는데요. 좋은 모습이죠. 중국 사람들은 “너는 죽어도 나는 살자.”라고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식으로 한다고 합니다.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사는 자세가 필요하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어느 거리에서 한 노인이 뭔가를 자꾸 주워서 주머니에 넣습니다. 경찰이 노인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가서 물었죠. “지금 무엇을 줍고 있습니까?”, “별것 아닙니다.”, “습득물은 신고해야죠.”, “뭐 이런 걸 신고합니까?” 그러며 노인이 보여주지 않자, 경찰이 강제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유리 조각들이었습니다. 혹시 애들이 놀다가 유리 조각에 다칠까 봐 애들을 배려해서 유리 조각을 주웠던 거죠. 민망한 경찰이 노인에게 “누구시죠?”라고 물었더니 노인이 “저는 작은 고아원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바로 그 유명한 교육학의 아버지 “페스탈로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얼마나 살기 좋은 사회가 되겠어요?

4> 서로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만 평가하고, 남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정죄하면 안 되죠. 우리는 낮아져야 합니다. 이웃을 얕보고, 짓밟아버리면서 어떻게 연합하고, 동거할 수 있겠습니까? 백인들이 유색인종들을 무시한다고 하지만 한국 사람들도 대단하죠. 백인들 못지않습니다. 우리는 포용력을 가지고, 손에 손을 잡고 살아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동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겁니다.

5>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어야죠. 적극적으로 남을 위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어떤 복을 주신다고 하죠? “보배로운 기름과 헐몬의 이슬처럼” 복을 주신다고 하죠. 그러므로 우리는 연합하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정글을 탐험한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재미나는 실험을 해보았는데요. 그곳에 사는 짐승들을 하나씩 없애보기로 했는데요. 먼저 새를 없애보니까 새소리가 없는 정글은 마치 공동묘지처럼 적막한 숲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음에 원숭이들을 쫓아내었더니 그동안 원숭이는 나무를 옮겨 다니며 나뭇가지를 꺾고, 숲을 망가뜨리는 줄만 알았는데 원숭이들이 떠나자, 나무들이 서로 엉키고, 덮이면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숲이 망가지더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뱀들을 제거했더니 천적이 없어진 쥐들이 숲에서 개판을 치며 해충을 잡아먹던 벌레들을 다 잡아먹음으로 숲이 병들어 죽어갔습니다. 이런 실험을 통해 학자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은 모든 것이 공존할 때 서로 건강하고, 질서가 잡힌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돕고, 공존하라고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겁니다.

“Unity in Diversity”라는 말이 있죠. “다양함 속에서 하나”라는 말인데요. 지난번 우리 교단 한인총회의 주제였죠. 세상에 똑같은 사람만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숨이 막혀서 살겠습니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다양함이 있으므로 세상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양함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