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25:1-7

25장은 찬양대의 직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찬양대장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아삽, 헤만, 여두둔인데요. 게르손, 그핫, 므라리 가문사람들이죠. 다윗은 언약궤를 다윗성에 모셔온 이후로 이들에게 찬양대를 맡기고,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그 중에 아삽의 찬양대는 예루살렘에서 봉사하였고, 헤만과 여두둔의 찬양대는 기브온산당에서 봉사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대상23:24=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대상23:28= “여호와의 전과 뜰과 골방에서 섬기고”

대상23:32= “또 회막의 직무와 성소의 직무와 그 형제 아론 자손의 직무를 지켜 여호와의 전에서 수종드는 것이더라.”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했는데요. 하나님을 섬길 때 어떤 모습으로 섬겨야 할까요?

1>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종을 섬기는 일은 없죠. 다만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섬기려면 종이 되고, 낮아져야죠. 요즘도 봉사자가 되려면 낮아지고, 종의 자리로 내려가야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오셨고, 그래서 제자들에게 섬기는 본을 보여주셨죠. 섬긴다고 하면서, 봉사자라고 하면서 남을 짓밟고, 억누르는 것은 섬김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2> 성실함으로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왕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로 시중을 들었습니까? 태도가 거칠다든지, 불성실하면 되겠어요?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성실함으로 섬겨야 하는 겁니다.

3> 최선을 다하여 직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직무를 충성스럽게 수행해야죠. 잘못하면 직무유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직무에 성실과 정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면 안 되죠.

4> 희생정신으로 협력을 잘해야 합니다.

“봉사”라는 헬라어 단어는 “디아코니아”인데 “찢어진 것을 싸맨다.”는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섬기는 사람은 찢는 사람이 아니라, 찢어진 것을 싸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위로하고, 싸매어주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협력하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주실 것임이라.”

오늘 우리도 믿는 사람으로서 싸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들춰내고, 후벼대고, 찢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감싸고, 치료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눅10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사람처럼 강도만난 이웃을 보면 다가가서 상처를 닦아주고, 기름을 발라주고, 싸매어 주어야 합니다. 상처는 싸매어두어야 합니다. 자꾸 건드리고, 자극하면 크게 번지고, 염증이 생겨서 더 고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남의 상처를 건드리고, 자극하면 결코 선한 일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좋은 모습으로 섬겨야 하는데요. 문제는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섬김을 받겠다고 하고, 높아지기를 원하고, 상대방이 무릎을 꿇고, 절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해결이 될까요? 그리고 섬기려는 사람이 적습니다. 희생, 봉사, 이런 것을 이제는 고전어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죠. 서로 함께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 말씀 중에서 8절을 봅니다.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무론하고 일례로 제비뽑아 직임을 얻었으니”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나” 모든 사람들이 낮은 자리에서 서로 협력했다는 말씀이죠.

한국의 연예계를 보면 주연급보다 조연급 연기자들이 더 대우를 받는 모습을 간혹 봅니다. 조연급으로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드는 연기자들에게 출연신청이 쇄도하고 있는 겁니다. 훌륭한 조연이 없으면 훌륭한 드라마를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등만 기억하고, 일등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모 아니면 도”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드라마, 직장, 학교에서도 2인자의 자리가 아름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봐도 수많은 주연급 사람들이 있죠. 모세, 아브라함, 요셉, 다윗, 베드로, 바울이 있지만 그들 뒤에는 언제나 2인자 정신으로 말없이 뒤를 받쳐주고, 협력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없이 된 일이 있습니까?

힘에는 세 가지 원리가 있다고 하죠. 하나됨(Unity), 조화(Harmony), 협력(Cooperation)입니다. 자동차도 한대를 만들기 위해서도 2만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2만 개가 모여서 하나의 자동차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동차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부속품 하나하나가 제구실을 잘해야죠. 어느 하나가 말썽을 부리면 잘 굴러가겠어요?

오늘 25장은 24그룹의 사람들이 협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직분을 수행하였습니다.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죠. 이처럼 우리도 각자의 재능으로 협력하여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