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45:1-8

시45편은 왕이 결혼할 때 주로 부르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이 시는 궁극적으로는 신랑되시는 메시아와 그의 신부된 교회의 연합을 예언한 시라는 점에서 메시아 예언시라고도 하죠. 1-8절은 결혼식에 임하는 왕의 위엄과 존귀, 9-15절은 왕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신랑은 어떤 분으로 묘사되어 있죠?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본문의 왕이 누구를 가리키는 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이 메시아 예언시라고 한다면 본문의 신랑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말로 볼 수 있죠. 어떤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까?

2=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아름답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요프야피타-יָפְיָפִיתָ”라고 하는데 최고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단어죠. 세상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초월적인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3-5절은 신랑의 능력을 찬송하고 있는데요. 능한 자로, 대적들을 이기는 능력자로 표현합니다. 이런 분은 바로 메시야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6-7절은 신랑의 통치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여기서는 왕이란 단어가 하나님으로 바뀌고 있죠. 메시아의 통치를 의미하는데요. 7절을 보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라고 하죠. 왕의 인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5편에서는 다양하게 메시아를 소개하죠. 2절은 왕의 인품이 아주 탁월하고, 3-5절은 모든 원수를 이기는 능하신 전사로, 6-7절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시는 분으로, 8절은 영원한 기쁨을 소유하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메시아를 이렇게 소개하는데요.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렇게 예언되었죠.

기독교 철학자 키엘케골은 예수님의 탄생을 설명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천한 소녀를 사랑한 왕이 있었는데 그 소녀는 혈통도 좋지 않고, 교육도 받은 일도 없고, 가난하여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마음을 전달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어떤 신하는 명령을 내려 왕비로 삼으라고 하고, 다른 신하는 지위를 높이고, 벼슬을 주고, 공주들이 입는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후에 궁으로 데려오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소녀가 정말 왕을 사랑하는지, 지위와 보석 때문에 왕을 사랑한다고 하는지를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중대한 결심을 했는데 왕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하고,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농부가 되어 소녀가 입고 있는 누더기를 입고, 오두막집에 살면서 사랑을 얻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키엘케골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의 사건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태어나신 예수님은 두 가지 이름이 있는데 첫째 이름은 “예수”입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의 히브리단어는 여호수아, 혹은 예수아인데요. 그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라는 뜻이죠. 예수님의 이름이 바로 구원으로서,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사명이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러분,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어요? “로이 레신”이라는 분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지식이라면 교육가를,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건강이었다면 의사를,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면 사업가를,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즐거움이라면 연예인을,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죄 사함이었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세주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님이시죠.

예수님의 두 번째 이름은 “임마누엘-עִמָּנוּאֵל-Ἐμμανουήλ”이죠.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의 이름이 구원의 역할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임마누엘은 동행의 역할을 나타내는 이름이죠. 히브리어로 임마누엘은 두 개의 단어인 임마누 (עמנו, Immanu, 우리들과 함께 있다)와 엘(אל, El, 하나님)이 합성되어 “하나님은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라는 의미죠. 헬라어로는 “하나님(El)이 우리(manu)와 함께(Im)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평생에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와 평생을 함께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시45편이 왕의 결혼식 축가로 불리는 시라고 했는데요. 결혼이 무엇입니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평생을 함께하자는 약속이죠. 만남과 동행,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결혼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이것은 신앙생활의 본질과도 같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한평생 따르는 것입니다. 우연히 스치고, 지나가는 그런 만남이 아니죠. 결혼생활이 ‘평생의 동행’이 요구되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영원한 동행’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결혼한 사이인데요.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연합한 성도로서 날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