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2:1-11
1-2=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건데요.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말씀이 시32편입니다. 본문에는 허물의 사함을 받은 자가 행복하다고 하죠. 이것은 시32편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 2, 5절을 보면 죄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요. 죄에 대하여 세 가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1> ‘허물’이라는 단어입니다.
“허물”이라는 말은 “폐솨-פֶּשַׁע”인데요. “고의적으로 법을 범하다.”라는 말입니다. 사53:6절에서도 이 단어가 쓰이고 있는데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그릇 행하는” 것을 허물,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죄’라는 단어입니다.
죄는 “하타아-חֲטָאָה”인데요. 이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죠. “어떤 기준이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단어가 헬라어로 번역했을 때는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라고 하는데요. “표적을 맞추지 못했다.” “표적에서 빗나갔다.”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롬3:25절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는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표준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영국의 한 설교자가 “하마르티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영국에서 호위병의 선발기준에는 키가 2m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1cm라도 작으면 자격 미달로 거부를 당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죄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이 표준에 크게 미달이 됩니다.” 사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기준에 모자라죠.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3> ‘죄악’이라는 단어입니다.
‘죄악’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아운-עָוֹן”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태도와 관련된 말입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너희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니라.” 죄악이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죄악이죠. 악하고, 부패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죄악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세 종류의 죄를 다 고백하고 있죠. 그럴 때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셨습니다. “사함을 얻고”, “가리움을 받고” “정죄를 당치 않은” 이런 표현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모든 죄에 대하여 책임을 묻지 않고, 용서해 주신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죄 사함을 받습니까?
1> 죄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3=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죄를 토설하지 않았을 때는 괴로웠지만 죄를 토설했을 때는 용서를 받았다는 말이죠. 그래서 죄에 대하여 솔직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요한이 말했듯이“우리가 죄 없다 하면 거짓말하는 자라.”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인정하고, 죄인임을 인정해야 죄 사함을 받습니다.
2>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죄를 다 고백하죠. 고백하지 않았을 때는 어떠했습니까?
3= “내 뼈가 쇠하고”
4= “내 진액이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하고 거의 1년을 그냥 지냈습니다. 이렇게 죄를 숨기고 지낼 때 행복했습니까? 아니죠. 죽을 지경입니다. 영적으로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5= “내가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죄를 누구에게 고하죠? 5절에 보면 “여호와께, 주께” 자복하고 아뢰죠. 여러분, 죄는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를 받게 되죠. 그리고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겁니다. 시34:19절을 보면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는 거죠.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상반된 것이 있습니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된다고 합니다. 당연한 거죠. 죄 용서를 받았는데 얼마나 기쁘겠어요? 하늘을 날아다닐 만큼 기쁘죠. 우리도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다 용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길을 지나가는데 한 소녀가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저의 아버지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빌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무슨 사연이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라고 하자 나폴레옹이 “그러냐? 법을 어겼으면 어쩔 수가 없구나!”라고 하자 소녀가 흐느껴 울며 말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침묵을 지키던 나폴레옹이 “네 말대로 아버지를 용서할 터이니 돌아가거라.”라고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자비가 풍성하신 분입니다. 다윗도 용서하시고, 십자가의 강도도 용서하셨죠. 누구나 회개하면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용서의 기쁨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