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9, 2024

벧후3:14-18

본문은 베드로 사도가 마지막으로 기록한 말씀인데요. 베드로는 신앙의 성숙을 강조하죠. 어떻게 성숙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 거룩한 생활을 하라고 합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삶을 살면서 평강을 누리며 살라고 말씀하고 있죠.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살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죠.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르고, 깨끗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죠.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살 수 있을까요?

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여짐이니라.”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생활을 해야 한다는 거죠.

2> 예수님의 인내를 본받으라고 합니다.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예수님께서 오래 참고, 인내하듯이 우리도 참고, 인내하면서 믿음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인내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3> 말씀 앞에서 겸손하라고 합니다.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 모든 편지에도” 이 말은 바울이 쓴 모든 편지를 뜻하죠. 사도바울이 말한 종말과 재림에 관한 말씀도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 있는데 무식한 자들과 믿음이 굳세지 못한 자들이 그 말씀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모르면서 다 아는 척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는데도 그 날과 그 시를 안다는 사람이 있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지금도 기억되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장로교에서는 성경에서 본문이 7+2=? 답은 9인데도 교리적으로 10을 만들기 위해서 7을 8이라고 하거나, 2를 3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10이 만수이고, 9는 만수가 아니기 때문에 기어코 9를 10으로 만들어서 가르친다는 거죠. 물론 10이 되면 만족하겠지만 9를 말하면 9로 생각하고 지나가야죠. 억지로 끼어 맞추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죠. 우리는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는 멈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4> 무법한 자들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합니다.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베드로는 성경을 억지로 풀려는 거짓교사들에게 미혹되면 실족할 수 있기 때문에 미혹되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미국에 어느 유명한 목사가 있죠. 그가 TV에서 설교할 때 수천 명이 믿고, 수천 명이 치유를 받았다고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가만히 안 있죠. 그래서 각처에서 후원금이 몰려왔습니다. 그러자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었죠. 돈이라는 것이 벌면 벌수록 욕심이 나고, 쌓을수록 애착이 가는 것이 돈 아닙니까? 처음에는 필요한 곳에 헌금을 잘 썼지만 나중에는 개집에도 에어컨을 달아주었습니다. 그가 재판을 받을 때 재판관이 판결문에서 “당신은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말씀을 무시하고 살았네요.”라고 했다고 하죠.

우리는 베드로가 기록한 이 말씀을 더욱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거룩한 생활을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무법한 자들에게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중심으로 우리는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성숙한 믿음생활입니다.

18=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이것이 영적인 성숙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지막 당부처럼 이런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