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8, 2024

벧후3:8-13

본문은 종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라고 하죠?

1>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 합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왜 이런 말씀을 했을까요? 거짓선생들이 재림이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기에 대하여 얽매이지 말라는 거죠. 재림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때에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은 다르죠.

2> 회개하라고 합니다.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거짓선생들은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재림이 지연되는 이유는 재림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우리는 기다림으로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해야 하는 겁니다.

창5장을 보면 에녹이 나오는데요.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합니다. 왜 므두셀라를 낳은 다음부터일까요?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창을 던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을 던지는 자는 중요하죠. 고대부족에게 있어서 “창을 던지는 자”는 전쟁리더인데요. 창을 던져 적을 물리쳐야 하는데 이 사람이 죽으면 그 부족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므두셀라가 죽으면 멸망이 온다는 암시이기도 하죠.

한편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므두셀라”는 히브리어로 두 단어의 합성어인데요. “무트-죽음”과 “셀라-보내다.”의 합성어입니다. 무슨 말이죠? “므두셀라가 죽으면 죽음을 보낸다.” 즉, 심판이 온다는 의미라고 해석하기도 하죠. 그래서 ‘므두셀라’란 이름에 심판을 암시하는 뜻이 있고, 그 므두셀라가 죽자 홍수심판이 왔었죠. 아무튼 에녹은 심판을 생각하며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3> 거룩하게 살라고 합니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로서 마땅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라고 하죠. 날마다 주님을 생각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4> 재림을 사모하며 살라고 합니다.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재림을 믿으라는 말씀이죠. 그러나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되죠. 믿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신앙은 중요하지만 시한부 종말론은 잘못이죠.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5>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12-13=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불에 타서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사방이 불천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약속되어있죠.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승리하신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나폴레옹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창과 칼로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창과 칼도 없이 세계를 모두 정복했으니 그분이야말로 위대한 승리자이다.” 우리에게는 승리하신 예수님이 계시죠. 그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우리에게 천국을,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신앙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함흥차사”라는 말이 있죠. 이조의 제3대왕 태종은 제1대왕인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데요. 이성계가 이씨조선을 세울 때 공을 크게 세웠죠. 그러나 이성계는 나라를 세운 다음에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되었는데 정도전을 비롯한 간신들이 방석에게 붙어서 자기를 모해하려고 하자 이성계는 군사를 동원하여 이들을 물리쳤죠. 그래서 이성계는 왕위를 장남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정종의 양위로 왕이 된 태종은 아버지 이성계의 귀환을 바라면서 신하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성계는 신하들을 죽임으로서 함흥으로 간 차사들이 돌아오지 못했죠. 그래서 생긴 말이 바로 ‘함흥차사’라는 말입니다. 가기는 가는데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죠.

여러분, 예수님도 함흥차사일까요? 예수님을 함흥차사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속히 오리라”,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성경은 분명히 다시 오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생활을 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