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0:1-9

현대를 PR 시대라고 하죠. PR은 Public Relation의 줄임말로 자신을 홍보하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린다고 하죠. 그런데 PR을 과장하여 지나치게 광고하면 허위광고가 될 수 있습니다.

약4: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사실과 다르게 과장하지 말라는 말씀이죠. “허탄한 자랑”이라고 하는 것은 “허영에 들떠 장담하는 것”, “우쭐되며 자랑하는 것”을 말하죠. 그래서 이런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라고 하죠. 그런데 허탄한 자랑은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이죠?

1> 사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자랑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사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언젠가는 죽고,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미련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랑할 것이 못되죠. 그러니 사람을 자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2> 소유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에 걸렸다가 나았습니다. 바벨론에서 사신이 예물을 가지고 왔을 때 왕이 어떤 행동을 하였습니까? 극진하게 대접하면서 왕궁 곳곳을 다 구경시켜 주죠. 왕궁의 보화들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선지자가 책망하였는데요. 무엇이 잘못이죠? 쓸데없는 자랑을 했다고 하죠.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이 왕궁의 보화를 다 가져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예언대로 바벨론이 침공하여 빼앗아 갔죠. 어리석은 자랑을 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있었습니다. 마침 한 마리 여우가 그 밑으로 지나가다가 고기를 보고 빼앗아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까마귀에게 말을 걸었는데요. “까마귀님은 노래를 잘 부르신다면서요? 그 아름다운 노래 한 곡조를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이 말을 들은 까마귀는 우쭐해서 목청을 가다듬고 “까악, 까악” 노래를 부르다가 입에 물었던 고기를 떨어뜨렸죠.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우가 고기를 물고 도망을 쳤습니다.

여러분, 무분별한 자랑은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7-8절을 보면, 병거와 말을 자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하죠? “저희는 굽어 엎드러진다.”라고 하죠. 전쟁에서 병거와 말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의지하면 망한다는 겁니다. 사람의 지혜나 권세도 자랑하다 보면 한순간에 그것이 없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자랑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1-5=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그렇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높이 들어주시며, 도와주시고, 붙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바 기름부음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해 주신다고 하죠?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오른손으로 구원하신다고 하죠. 그래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바울이 말했죠.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그러면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주석가 메튜헨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는 목자를, 목자는 교회를 자랑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주안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주님 안에서 서로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대개 교인들입니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 큰소리로 교회 이야기를 하니까 알죠.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이 흉을 본다는 겁니다. 목사가 어떻고, 권사가 어떻고, 흉을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럴 때는 목소리라도 작으면 좋겠는데 큰소리로 흉을 보니까 교양이 없어 보이는 겁니다.

여러분, 이왕이면 자랑하는 것이 좋겠죠. 교인은 목사를 자랑하고, 목사는 교인을 자랑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도바울이 그랬죠. 고린도 교회를 말하면서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고후1:14) 사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로 유명한 교회 아닙니까? 바울의 사도권을 무시하고, 사생활을 비난하고, 있는 말, 없는 말로 고통을 준 교회였습니다. 그런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이렇게 말하죠. 이런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줍니다. 형제끼리 허물을 들추고, 다투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자랑하십시오. “흑은 병거, 흑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자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