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4:1-7

종교개혁을 했단 마틴 루터가 법대를 다니다가 신학교로 옮긴 이유는 친구와 여행하던 중에 만났던 벼락 때문이라고 합니다. 소나기에 천둥번개가 쳐서 나무 밑에 피하였는데 하필 벼락이 그 나무를 치고 친구가 나무에 깔려 죽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누구나 두려운 마음이 들게 되죠. 그런데 이런 천재지변은 무서워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본문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죠. 어리석은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합니까?

1>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본문의 말씀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이 하나님이 없다는 말입니까? 어리석은 자들이 그렇게 말한다는 거죠.

시10:4= “악인은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악인들이, 어리석은 자들이 그렇게 말한다는 거죠. 앞뒤를 잘라버리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죠.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2> 선을 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3=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왜 그렇습니까? 부패하고, 타락해서 그런 거죠.

3>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2= “여호와께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하나도 없도다.”

4=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을 부르고, 찾는 자가 없다고 하는데요.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찾지 않는 자들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1>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어리석다면 하나님을 믿고, 찾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죠.

2= “여호와께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지각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죠.

2>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4=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 품으로 오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겁니다.

어떤 집에서 아들이 번잡스럽게 놀다가 귀한 도자기를 깼습니다. 엄마가 매를 댔죠. 그런데 애가 엄마의 목을 껴안고 울면서 “엄마가 한번 맞아봐. 얼마나 아픈데! 엄마는 아들의 다리에서 피가 나면 좋겠어?”라고 하며 매달렸습니다. 그러는데 더 때릴 수 있겠습니까? 아들을 안으며 “앞으로는 조심해야 해!”라고 했다고 합니다. 벌을 내릴 때 도망을 치고, 부모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자식이 있고, 매를 맞으면서도 부모의 품으로 뛰어드는 자식이 있습니다. 누가 더 예쁠까요?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저를 버리지 마세요. 저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시겠죠. 이렇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1>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6=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시46: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바티칸 박물관에는 로마의 지도를 시대별로 그려놓은 방이 있다고 하는데요. 지도를 비교해 보면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앞의 지도에는 폼페이가 있는데 뒤의 지도에는 폼페이가 없습니다. 폼페이는 화산 폭발로 묻혀버렸는데, 수 세기가 흐른 뒤에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죠. 발굴 작업을 통해 수많은 시체를 찾았는데요. 그 시체들이 나온 곳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시체는 깊은 지하실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곳으로 피하면 안전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떤 시체는 건물의 가장 높은 방에서 발견되었는데 거기로 올라가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죠. 그러나 모두 화산재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세상에는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어느 마취과 의사가 달러트리 매장에 가서 스스로 냉동고에 들어가서 하루 만에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타살 흔적은 없는 것으로 보아서 개인적인 문제나 어떤 정신적인 문제를 가졌는지를 조사한다고 하는데요.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겠죠. 여러분, 세상에는 안전을 보장하는 피난처가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에게는 어떨까요?

다람쥐를 보세요. 작지만 맹수에게 잡히지 않습니다. 사나운 짐승이나 큰 동물이 습격하면 다람쥐는 바위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면 아무리 사납고, 강한 동물이라도 바위틈에 몸을 숨긴 다람쥐를 잡을 수가 없죠. 나약한 다람쥐에게 바위틈은 바로 천연 요새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바위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우리의 구원자는 하나님이시죠.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십니다.

7=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하나님은 구원과 기쁨을 주시기 위해 구원받을 백성을 찾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고 구원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죠.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오늘도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의 품을 날마다 사모하며 하나님을 찾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