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49:1-9
시148편이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라면 시149편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인데요.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새 노래는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의미하죠. 과거를 회고하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과 자비를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따라서 새 노래로 노래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은혜의 체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와 사랑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찬송가에 있으니까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송이 아니죠. 찬송은 은혜 가운데 감사함으로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1=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여기 “성도”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시딤-חֲסִידִים”이라고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죠. 5, 9절에서도 “성도-하시딤”이라는 단어를 반복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
시온의 자민은 시온의 주민, 시온의 백성이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자기를 지으신 자, 저희의 왕”으로 표현하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우신 왕이라는 고백입니다.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는 하나님께 찬송하라는 말입니다.
3=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춤을 춘다.”라는 말은 즐거움을 표현하는 동시에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말입니다.
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신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을 구원하셨다고 하죠? “겸손한 자”들을 구원하셨다고 하는데요.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백성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5= “성도들은 영광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찬송할 때 침대에 누워서 하라는 말이 아니라 쉬기 위하여 침대 위에 누워있을 때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라는 말이죠.
6=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직역하면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을 높임이”가 되는데 목청을 높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이스라엘이 전쟁할 때 어떻게 하였죠? 입으로는 찬송을 부르고, 손에는 칼을 들고 싸우는 전쟁 모습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데요.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7=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이 말씀은 예루살렘을 파괴했던 바벨론과 이방 세력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암시하는 표현이죠. 아무튼 이스라엘이나 성도들이나 교회를 박해하면 하나님이 참지 않죠. 하나님이 보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8=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 고랑으로 결박하고”
7절에서 말한 것처럼 바벨론과 이방 나라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대로 당하는 거죠.
9=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지로다.”
직역하면 “기록된 심판을 그들에게 집행할지로다.”인데요. 율법에 기록된 심판을 의미하죠. 율법대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65:6=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보응하시는 것입니다. 다니엘 웹스터는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였습니다. 이분이 미국의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저명한 인사 20명과 저녁을 먹었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웹스터는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분이 “뭘 그렇게 생각하시오?”라고 묻자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을 내가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엄숙해집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겠죠.
노벨이 33세 때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고 돈을 많이 벌었죠.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조간신문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사 내용은 “노벨이 죽었다.”라는 기사였는데요. “다이너마이트의 왕이 죽었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가 죽었다!”라고 소개되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노벨은 생각하기를 “지금은 내가 살아있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죽었다면 이 기사가 사실이 되겠지! 오늘이라도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래서 그가 모은 재산을 이제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고 싶어서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노벨상 제도죠.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9=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이 문장은 히브리어로 보면 “하다르 후 레칼 하시다 할렐루야-הָדָר הוּא לְכָל־חֲסִידָיו הַלְלוּ־יָהּ”라고 하는데요. 문자적인 의미는 “이것은 그가 사랑하는 모든 자를 위한 영예이다-This is glory for all his faithful ones, 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이방 세력들에 대한 심판과 같은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결국 택한 백성을 영예롭게 하시는 사랑의 표현이라는 말씀이죠.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