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10:1-9

욥, 시편, 잠언, 전도서를 “지혜서”라고 하는데요. “지혜”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구약학자 Von Rad는 지혜를 “경험에서 나온 세상의 질서이자, 원리”라고 했는데 이 원리를 따를 때 평화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Von Rad는 여러 종류의 지혜를 말하고 있는데요.

첫째, 생활에서 나오는 생활 지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의 집에 자주 방문하면 주인이 싫어한다.”, “말이 많은 사람과는 함께하지 말라.”, “젊은 사람은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모두 경험에서 나온 교훈들이죠.

둘째, 자연현상에서 나오는 지혜가 있습니다. “여름에 잠자는 자는 게으른 자이다.”, “개미는 여름에 부지런히 일하므로 추수 때에 부요하다.” 이처럼 계절, 동물, 곤충, 자연현상에서 나오는 지혜들이죠.

셋째,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지혜가 있죠.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지혜가 있습니다.

욥28:12-13=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그 값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 찾을 수 없구나!”

하나님의 지혜를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요? 세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는 지혜가 있습니다.

20-23=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의 새에게 가리워졌으며,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 하느니라. 하나님이 그 길을 깨달으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하나님의 지혜는 신비로운 것인데요. 그래서 Von Rad는 세상에서 나오는 지혜와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를 구분하면서 지혜란 “세상의 질서이자, 세상을 사는 원리”라고 말했죠.

Crenshaw라는 학자는 지혜를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는데요. 사람들은 세 가지의 관계에서 자신을 이해한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사물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이해한다고 합니다. 자연현상을 보면서 나를 깨닫는다는 말이죠. 둘째,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이해한다는 겁니다.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말이고요. 셋째, 신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이해한다는 건데요. 이렇게 사물, 인간관계, 신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지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간혹 잠언에서는 지혜를 의인화하여 마치 사람인 것처럼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잠1: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그래서 어떤 분은 지혜를 아예 예수님으로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옛날 박윤선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했는데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길거리에 나타나셔서 부르셨다는 말일까요?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를 이렇게 사람으로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있습니다.

잠언에 보면 훈계, 명철의 말씀, 슬기, 지식, 이런 말씀들이 자주 나오는데요. 모두 지혜의 동의어죠. 그래서 지혜는 Von Rad가 말한 대로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최상의 질서와 원리를 말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귀한 것이고, 우리가 따라야 하는 삶의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그리고 잠언을 보면 잠언에는 대개 900여 개의 잠언이 있고, 그중에 200여 개는 반복되는 잠언입니다. 그리고 잠언의 구성을 보면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먼저 1-9장은 제법 긴 잠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하나님 경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Inclusio”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하는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같은 말로 반복하여 전체를 강조하는 의미를 갖는데요.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그래서 1-9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0-22장은 스타일이 다른데요. 10-15장은 구절마다 앞부분과 뒷부분을 다르게 말하면서 주로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을 “반의 병행법”이라고 하는데요.

10: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지혜로운 아들과 미련한 아들을 대조하고 있고, 아비를 기쁘게 하는 것과 어미를 근심하게 하는 것을 대조적으로 말하고 있죠.

10:11=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의 입과 악인의 입, 생명과 죽이는 독, 이렇게 다른 것을 말하고 있죠.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미움과 사랑, 다툼을 일으키는 것과 허물을 가리는 것, 정반대의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16-22장은 “동의 병행법”을 쓰고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두 번씩 반복하고 있죠. 25-27장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한 번만 기록되어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28-29장은 한 줄이 한 잠언으로 되어 있죠. 30장은 아굴의 잠언이라고 하고, 31장은 “여전도회 헌신예배장”이라는 별명이 붙었죠. 현모양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잠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많이 읽으시고, 지혜로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