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9:1-10
2절은 사울의 인품을 말씀하는데요. 3절부터는 사울의 인품이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데요. 사울이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1> 사울은 부유한 가정의 자녀였습니다.
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유력한 사람”이란 말은 부유하고, 지역유지라는 말인데요. 사울은 부유한 지도층 자녀라는 것입니다. 소위 금수저였죠.
2> 사울은 건강하고, 준수하였습니다.
2=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
“준수하다”라는 말은 잘생겼다는 말이죠. 영어로 “handsome”하다는 말인데요. 사울보다 잘생긴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키는 얼마나 컵니까?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라고 하죠. 건장하면서도, 잘생겼다는 것입니다.
3> 순종심이 강한 아들이었습니다.
부친이 암나귀를 잃었는데 사울에게 찾아오라고 하자 한두 곳을 다녀보고는 없다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을 성심성의껏 찾으러 다녔습니다. 사울이 찾아다닌 거리를 계산해보면 약 40km 정도가 됩니다. 100리 길이죠. 한 시간에 4km를 걷는다고 할 때 40km를 다녔으니 10시간은 족히 걸렸을 것입니다. 아침9시에 출발을 했다면 오후7시, 해질 때까지 찾아다녔다는 말이죠. 이것은 찾는 척만 한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찾았다는 말인데요. 부유층의 자녀지만 효심이 가득하고, 성실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사울이 함께 하는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부친이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나귀도 나귀지만 부친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죠. 아버지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4>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6=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혹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사울이 집으로 가자는데 사환이 딴소리를 하죠. 그 때 사울은 자신의 말보다 종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만큼 좋은 인품을 지녔다는 말이죠.
5>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7절인데요. 사무엘을 만나러 갈 때 드릴 예물을 생각하였습니다. 예의를 갖추자는 거죠.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예의가 바르고, 준수하다는 겁니다.
6>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21=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왕은 에브라임 지파나 유다지파에서 나와야지, 가장 미약한 베냐민 지파에 속한 제가 어떻게 왕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사울은 겸손하여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효심이 가득하였고, 성실하였고, 예의가 바르고, 인품이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런 사울을 하나님께서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9장에는 중요한 교훈이 있는데 무엇일까요?
1>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부친이 나귀를 잃은 사건, 사울과 종들을 보낸 사건, 종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자고 한 것,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가다가 소녀들을 만난 것,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에 대하여 알리신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데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역사를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2> 슬픔을 축복으로 바꾸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암나귀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귀족들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서 동물을 타고 다녔는데요. 특히 암나귀는 온순하여 비쌌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잃었으니 얼마나 큰 손해였습니까? 그러나 이 손실이 불행만은 아니었죠. 그것 때문에 사울이 누구를 만났습니까? 사무엘을 만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경제적으로 손실을 보고, 힘든 일을 만났다고 해도 낙심하거나 실망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있죠. 전화위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종으로 팔려갔기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였기에 거기서 신하를 만났죠. 다니엘도 그렇습니다. 포로로 잡혀갔기에 바벨론에서 총리대신이 되었죠. 유다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바벨론 총리가 되겠어요?
요셉과 다니엘은 둘 다 유다의 귀한 집의 자녀였습니다. 요셉은 채색옷을 입고, 부친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다니엘도 유다의 왕족이거나 귀족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니 애굽으로,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때 이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고생이 심했을 것입니다. 손이 부르트고, 허리가 휘어질 정도로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신앙을 지킨다고 채소만 먹으며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형통하게 되었죠.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이루시고, 더 큰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10장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목자라고 하시죠. 시23편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라고 하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은 다윗이 언제 고백하였을까요?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고백한 말씀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라고 하죠. 정말 힘들 때였습니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았죠. 왜죠?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자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믿음과 고백으로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