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5, 2025

삼상8:1-18

“버림받은 예수님”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에는 예수님께서 대성당계단에 서계시는데요.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포츠 신문을 읽고 있고, 어떤 사람은 휴가를 가기위해 택시를 잡고, 신부님은 사람들과 토론을 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도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무관심하다는 거죠.

이처럼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하고 있습니다. 왜 이들이 하나님보다 왕을 구하였을까요?

1> 사무엘이 늙었다는 것입니다.

3장에서 부름을 받았을 때가 12세라고 한다면 4-6장에는 사무엘이 아예 등장을 하지 않고 있고, 7장에서는 미스바 회개운동을 인도하고 있는데 8장에서 와서는 벌써 사무엘이 늙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서 키우고, 사무엘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사무엘이 ‘늙었다’고 하는데요. 과연 몇 살이기에 늙었다고 하였을까요? 탈무드는 이 때 사무엘이 52세였다고 하고, 주석가 랑게는 70세 정도라고 하고, 다른 주석가는 50세 정도라고 합니다. 매튜헨리도 60세를 넘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그렇게 늙은 나이가 아닌데 늙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왕성한 활동을 못한 것만큼은 분명하죠.

2> 사무엘의 아들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3=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이런 것은 문제가 되죠.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가 되었는데 뇌물을 받고, 판결을 잘못하면 병폐죠. 그래서 백성들에게 원성을 들었습니다.

3> 이방나라들이 부러웠다는 것입니다.

5=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이방나라들이 왕을 세우고, 왕에게 다스림을 받았는데요. 그것이 너무 좋아보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사무엘은 왕을 세우면 후회할 것이라고 하죠. 많은 신하들을 거느릴 것이며, 풍성한 식탁을 원하고, 상비군이 필요로 하는데 누가 그 일을 할 거냐는 거죠. 11절에 보면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자기를 섬기는 자로 삼을 것이라고 합니다.

4> 하나님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7장에서는 하나님을 잘 섬겼잖아요. 우상을 버리고, 마음을 하나님에게로 향하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잘 섬겼잖습니까? 그런데 그 마음이 왜 이렇게 변하였습니까? 7장과 8장 사이의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요? 7장과 8장의 시간적 간격은 약 5년인데요. 어떻게 5년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요?

어떤 분이 교인들을 이렇게 분류했는데요.

감투교인= 교회에서도 감투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교인,

인력거교인= 누군가 이끌어줘야만 교회를 나오는 교인,

유람선교인= 오늘은 이 교회, 내일은 저 교회로 유람하는 교인,

핑계교인= 교회를 안 나온 이유를 물으면 핑계도 너무나 다양한 교인,

개구리교인= 주일에 어디로 튈지를 알 수 없는 교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주 변하였습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왕이 되어달라고 하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질렀죠.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는 이유는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늙었고, 사무엘의 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그들의 더 큰 잘못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잘못을 하면 신실한 사사를 보내달라고 기도했어야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는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허락을 하시죠.

바르지 못한 요구를 왜 들어주셨을까요? 두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경험을 통해서 잘못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10-18절을 보면, 왕을 세울 때 오는 폐단을 말씀하죠. 한마디로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고집을 피우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직접 경험해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요구할 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도 하나님은 때로는 허용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들 들면, 일부다처제와 같은 거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담에게 많은 여자를 만들어주셨겠죠. 그러나 한 사람만 주셨지 않습니까?

솔로몬을 보세요. 똑똑하고, 지혜로운 왕이지만 여인들 때문에 망하였죠. 나중에는 우상을 섬기고, 죽은 다음에 나라가 두 동강 났고, 그리고 솔로몬은 단명했습니다. 빨리 죽었습니다. 학자들은 솔로몬이 12세, 혹은 14세에 왕이 되었다고 보는데 40년을 치리하고 죽습니다. 그러면 몇 살에 죽었습니까? 52세, 혹은 54세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 손해를 보는 거죠.

2>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왕조가 얼마나 길었습니까? 이스라엘의 왕조는 그렇게 길지 못하였습니다. 북왕조는 BC 722년, 남왕조는 BC 586년에 망하죠. 이스라엘의 왕조가 BC 1050년경에 시작하여 북왕조는 328년 만에, 남왕조는 464년 만에 망하였죠. 하나님의 간섭을 벗어나면 잘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간섭을 벗어난 탕자가 행복했습니까? 자유로웠습니까? 아니죠. 거지가 되어 돌아오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거지꼴을 하고 나서 깨달으면 누구 손해입니까? 하나님의 품안에서 행복하게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