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3:44-49

가상칠언을 보면 첫 번째도 기도, 마지막도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기도로 시작하셨고, 마지막도 기도로 마감하셨죠.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모든 것을 마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1> 남을 위해 사셨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고, 남을 위해 생을 바쳤죠.

막10:45=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왔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기려고 오신 예수님은 항상 남을 생각하셨죠. 십자가에서도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원수들까지도 생각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2>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셨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는 모습이죠. 이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임재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를 믿었습니다. 12세 때 성전에 올라가신 일을 아시죠. 그때 부모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하였죠. 특히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죠. 수십 번 나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시고,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 것이 믿음이죠.

다윗이 고백한 대로 “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이처럼 하나님은 함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도 기도할 때 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죠.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2>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말씀은 시31:5절의 인용인데요. 이 기도를 처음 한 사람은 다윗이죠. 다윗은 힘이 들 때 꼭 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부탁드립니다.” 예수님도 마지막에 이 기도를 드렸죠. 오늘 우리도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다 그랬죠. 스데반, 폴리캅, 존 후스, 말틴 루터도 이 기도를 드렸고,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도 이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옛날 한국에 이성봉 목사가 있었습니다. 성결교 목사님이신데 이분은 늘 손을 꼭 쥐고 다니셨다고 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물었답니다. “목사님은 왜 손을 그렇게 꼭 쥐고 다니세요?” 그때 목사님은 “예수님 손을 잡고 다니니까 그렇지”라고 대답하셨다고 하는데요.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다니는 마음으로 사셨다는 거겠죠.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다니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못 잡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힘이 들어서 손을 놓쳐도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놓치지 않으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본문에 보면 예수님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1>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백부장은 예수님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욕을 받으시되 욕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용서하고, 참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마음이 녹아버렸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이 의인이었다는 것을 믿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백부장이 누구입니까? 로마 사람입니다. 이방인이죠. 이방인인 로마 사람이 이것을 믿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죠.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겁니다.

2> 구경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48절이죠.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나왔다가 가슴을 치고 돌아갔습니다. 가슴을 쳤다는 것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쳤다는 말이죠.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했는지는 모르지만 가슴 아파한 것은 사실입니다. 구경을 왔다가 양심의 가책을 받고 돌아갔죠.

3> 멀리서 바라보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누구죠? 주님을 따르던 자들입니다.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있습니다. 멀리 있다고 해서 비겁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한편 모든 사람이 돌아갔으나 예수님을 사랑하여, 집으로 가지 못하고, 끝까지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들의 모습은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당장 가까이 가고 싶지만, 군인들이 지키고 있죠.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수도 있잖아요?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거스틴이 어느 날,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들었는데 꿈에 예수님을 만났답니다. 예수님께서 어거스틴에게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그때 어거스틴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죠.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만을 원합니다.” 우리 같으면 무엇을 구했을까요? 우리는 날마다 많은 것들을 구하잖아요. 건강과 가정에 필요한 수많은 것들을 구하는데 예수님을 위해서는 무엇을 구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을 사모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