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9:25-27

오늘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세 번째의 말씀인데요.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부탁하시기를 “어머니를 네 어머니처럼 모셔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어떻게 합니까?

27= “그때부터 자기 집에 모시니라.”

교회 역사를 보면 평생을 어머니로 모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처럼 모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한국에서는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데요. “내가 왜 너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처럼 모셔야 하나?” 내 어머니도 안 모시는데 남의 어머니를 모시기가 쉽지 않죠.

며칠 전 한국 뉴스를 보니까 대구에서 50대의 한 여인이 강에서 시신이 되어 가방에 든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딸과 사위의 짓이었습니다. 사위에게 폭행을 당해 살해되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서운 세상이죠.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실천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죠.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도 잘 깨닫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사랑을 받아봤어야 알죠. 그런데 사도요한의 별명이 무엇입니까? “사랑의 사도”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처음부터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있었던 사건이 있죠. “벼락을 내려서 이 사람들을 쓸어버리시죠?” 이 말은 요한이 했던 말입니다. 왜 이런 말을 했죠? 자기들을 대접하지 않는다고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잔인하죠. 그런데 그가 사랑의 사람으로 바뀌죠.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예수님의 심장을 느끼고,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점점 사랑을 받고 느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요한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죠?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13장을 보면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의 풍습을 반영하는 말인데요. 음식을 먹을 때나 담소를 나눌 때 서로 기대어 앉아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곁에 누가 앉았습니까? 요한이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앉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심장 고동을 제일 많이 느낀 사람이 누구죠? 요한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느끼고 받은 제자였습니다. 그런 사랑으로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셨죠.

2> 예수님을 사랑한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알죠. 그래서 모친을 요한에게 부탁한 겁니다. 예수님은 효자였는데요. 효자는 효자를 알아보는 법이죠. 아무에게나 모친을 맡기겠어요? 다른 제자들은 도망가거나, 예수님을 멀리서 따랐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가까이서 따랐죠. 사랑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죠. 그러나 주님을 가까이서 따르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효성을 배워야 합니다. 기독교는 효를 강조하는 종교라는 거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부모를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임금님이 행차하는데 한 젊은이가 나이 많은 모친을 업고 서 있습니다. 그 젊은이는 효자로 소문난 사람인데요. 임금이 젊은이를 보고 왜 그렇게 모친을 업고 길에 서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어머니께서 임금님을 뵙는 것이 소원이어서 이렇게 업고 있습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큰상을 주었습니다. 소문이 나자, 다음 행차에 아주 불효자로 소문난 사람이 상을 받으려고 싫다는 어머니를 강제로 업고 나갔습니다. 임금이 묻자 “어머니의 소원이라서요.” 그러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말하죠. 상 받으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때 임금이 뭐라고 했을까요? “저 사람에게도 상을 주어라. 효도는 흉내라도 내어야 하느니라.”라고 하였답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하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도 어머니를 공경하셨죠. “여자여 보소서” “여자여”는 “여인이시여”라는 말입니다. 헬라어로는 “귀나이”인데요. 이 단어는 왕후나 여왕에게 쓰는 단어입니다. 최고의 명칭이죠.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다음에 어머니께서 어떻게 사실까? 그래도 사랑의 제자 요한이 모시면 좋겠다는 뜻에서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겁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것은 이렇게 귀한 일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랍비가 있는데요.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너는 천국에 가면 푸줏간 주인인 테네스 옆에 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푸줏간 주인은 한국식으로 말하면 백정인데요. 유대인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죠. 그래서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을 하다가 사람을 풀어서 “테네스”라는 백정을 찾았습니다. 찾아보니 아주 산골 마을에 사는 백정이었습니다.

그러자 랍비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라고 기별했는데요. 그런데 오지를 않습니다. 할 수 없이 랍비가 시골로 찾아갔는데요. “왜 오라니까 안 오냐?”고 물었더니 “유명한 랍비님을 만날 기회인데 왜 마다하겠어요? 실은 제가 노모를 모시고 있는데 어머니 때문에 자리를 잠시라도 떨 수가 없어서 못 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랍비는 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정말 귀한 사람인가를 배웠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효성을 다하고,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붙여주는 사람들을 잘 섬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