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6, 2024

창12:1-9

본문에 아브라함이 등장을 하는데요. 아브라함은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도 많이 나오죠. 성경에 이름이 한번 나오는 것도 영광인데 아브라함은 신약에만도 75번 이상 나옵니다. 얼마나 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롬4:11절은 아브라함을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라 했고,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말로 시작하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할 때 성경은 자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라고 해도 되는데 아브라함의 이름을 넣어서 말씀하죠. 또 성경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고도 했는데요. 그만큼 아브라함은 중요한 사람인 거죠.

이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아브라함은 믿음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사람이죠.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야 하는데 아브라함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었을까요?

1> 말씀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산 사람이죠. 오늘 우리도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 가는 신앙이 바른 신앙이죠. 말씀을 사랑하면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영국의 왕 제임스 1세는 King James Version을 번역한 왕으로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한 번은 “암스트롱”이라는 좀도둑이 양을 훔치다가 잡혀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요. 이 때 암스트롱은 사형을 피하기 위해서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하고 간수에게 부탁하기를 “나는 어차피 죽을 몸, 마지막으로 성경을 읽고 싶소. 왕에게 내 뜻을 전해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왕은 그 소식을 듣고 “기특한 죄수일세! 그에게 성경을 주고, 성경을 모두 읽은 다음에 사형을 집행하라”고 했습니다. 암스트롱은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1년이 지나도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답니다. 이유는 하루에 한 구절만 읽었기 때문이죠. 하루에 한 구절만 읽으면 얼마를 더 살 수 있는지 아세요? 구약이 23,214절이고, 신약이 7,959절인데요. 합치면 31,173절로 다 읽으려면 85년이 걸립니다. 결국 왕은 죄수를 풀어주면서 “집에 가서 성경을 읽도록 하라”고 했답니다. 성경 때문에 석방되었죠. 암스트롱은 그 후에 새사람이 되어 믿음으로 여생을 봉사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말씀을 읽으면 이런 일도 생기는 것입니다.

2> 기도하는 신앙이었습니다.

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였다는 말입니다. 롯을 위해 기도하는 아브라함을 아시죠. 의인 50-45-30-20-10명이면 용서하시겠습니까? 이런 기도 때문에 롯이 구원받지 않았습니까? 기도하는 자가 승리합니다.

3> 예배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단을 쌓았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드렸다는 말이죠. 아브라함의 신앙은 예배드리는 신앙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배는 중요하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일이기에 중요하죠. 예배 없이는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말씀, 기도,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이 창대해졌고, 복의 근원, 즉 복의 통로가 되지 않았습니까?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릇을 가지고 오면 보물을 채워주겠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작은 그릇을 가지고 왔기에 작은 그릇에 보물을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큰 그릇을 가져왔기에 채워주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아주 큰 그릇을 가지고 왔는데 역시 보물을 큰 그릇에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사람이 항의를 합니다.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보다 많이 주시오!” 그때 주인이 뭐라고 했겠어요? “당신에게는 더 줄래야 더 담아줄 그릇이 없지 않느냐?”라고 했다고 하죠.

여러분,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 주고 싶은데 담을 그릇이 없으면 어떻게 받겠습니까? 또 그릇이 작으면 많이 주어도 넘쳐흐르죠. 받을 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준비하는 대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말씀중심, 기도중심, 예배중심의 신앙으로 복의 통로가 되는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