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9:28-40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이하여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요.
29=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벳바게는 예루살렘 남쪽 1.6km, 1마일 지점이고, 베다니는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가 사는 동네였죠. 이 때 예수님은 제자 두 사람에게 맞은 편 마을로 가서 아무도 타지 않았던 어린 나귀를 끌어오라고 하셨는데요. 황당한 심부름이었습니다.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나귀를 훔쳐오라는 말이 아니라, 주인에게 부탁을 했다는 말씀이죠. 이 말씀을 듣고, 두 제자는 마을로 갔습니다. 갔더니 마침 나귀새끼가 있어서 나귀를 풀었죠.
33= “나귀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새끼를 푸느냐”
이렇게 물었을 때 제자들이 틀림없이 “주님이 쓰겠다는데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가져가세요.” 이렇게 전개가 되었겠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믿는 사람이겠죠. 두말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어느 전도사님이 장가를 가야하는데 너무나 가난한 전도사님에게 누가 시집을 오겠어요? 그런데 참 마음에 드는 처녀를 만났답니다. 그 처녀가 시집을 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저분이 나한테 시집을 올까? 걱정하며 기도를 하는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대로 해보자!” 이렇게 결심을 하고 중매쟁이를 처녀에게 보내면서 다른 말은 하지 말고, 이 말만 전하라고 했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중매쟁이가 가서 그대로 전했는데요. 그 처녀가 믿음이 좋아서 “주가 쓰시겠다니 가겠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장가를 갔다고 하는데요. 황당한 말이지만 그 정도로 순종을 했으니 얼마나 훌륭한 사모님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나귀를 타셨을까요?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왜 타셨는지를 스가랴가 예언했죠.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이시므로 평화와 순결을 상징하는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37-38=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막11:9-10=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님을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라고 찬송하죠. 예수님은 메시아로 오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고난주간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1>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에게 “건너편 마을에 가서 나귀를 끌고 오너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바로 순종하였죠. 순종은 제사보다 나은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37-38=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같은 내용을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송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메시야”라는 말씀이고, “호산나”는 “지금 구하소서!”라는 뜻이죠. 그러니 예수님의 Mission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고, 우리의 Mission은 예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웃었습니다. 예수님도 못마땅하고, 제자들의 행동도 싫었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자 비난을 퍼부었죠. 여러분, 우리는 제자들처럼 순종하고, 찬송해야 할까요? 바리새인들처럼 비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당연히 말씀에 순종하고, 찬송하는 사람이 되어야죠. 이런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3> 예수님을 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메시아로, 우리를 구원하는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려고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찬송하고,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이고, 우리의 소망입니다. 오늘날이나 예수님 당시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예수님 당시의 유다는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 통치하에 있었는데요. 로마는 유다에서 세금으로 600달란트를 가져가고, 헤롯은 연간 1,000달란트를 가져갔습니다. 1달란트는 1만 데나리온이고, 1데나리온은 장정의 하루품삯이니까 로마는 6백만 명의 임금을 가져가고, 헤롯은 천만 명의 임금을 착취한 셈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인구가 그렇게 많지를 않았죠. 그러니 백성들의 허리가 휘어졌죠. 굶주렸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렀는데요. 그런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인, 경제적 이유로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고, 영적인 이유로 오셨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이렇게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찬송하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찬송하며,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느끼며,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