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6:1-8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은 다음에 크게 상심을 한 것 같습니다. 웃시야 왕이 벌을 받아 문둥병자가 되고, 왕위에서 쫓겨나 별궁에 홀로 거하다가 죽죠. 그때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는데요. 이사야가 알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1>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뵈었는데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고, 천사들이 노래하는 소리로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고,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게 된 거죠. 그로 인하여 이사야의 삶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주인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이런 순수한 믿음은 귀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것은 “빛과 바다와 소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소금이 가장 순결하다고 하는데 이유는 순수한 빛과 순수한 바다가 합쳐져서 소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하죠. 그런데 예수님은 “소금처럼 순결하라.”고 하시지 않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소금 대신에 비둘기를 말씀하셨을까요? 여기 비둘기는 “페리스테라-περιστερά”인데 “집비둘기”를 가리킵니다.
집비둘기는 주인에게 아주 충성스럽다고 하죠. 그래서 편지나 전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집비둘기를 훈련하여 주인의 편지를 전달했는데요. 이런 비둘기를 “전서구”라고 하였죠. 많은 비둘기가 무리를 지어 날아도 주인이 있는 비둘기는 주인을 정확히 찾아 편지를 전해준다고 합니다. 주인을 알고,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거죠. 그러므로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씀은 “세상에 섞여 살다가 주인을 잃어버리지 말고, 비둘기처럼 주인이신 하나님에게만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2> 자신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뵙게 된 이사야는 자신의 영적인 더러움을 깨달았습니다. 이사야가 무슨 죄를 많이 지었겠습니까만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당당하던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죄인임을 알게 되었죠. 베드로도 예수님을 만나자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하며 예수님 앞에 엎드렸죠. 이처럼 이사야도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모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까 고개를 들고, 잘난 척하는 거죠.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면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죠. 회개하는 사람이 바른길을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차를 잘못 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꿔 타야죠. 그런데 갈아탈 생각은 하지 않고, 기차 안에서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자기가 가려던 목적지로 가는 줄 알고 있습니다. 기차 안을 청소하고, 노약자를 도와주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자기 돈으로 음식을 사주고, 그러니까 기차 안의 승객들이 모두 칭찬하죠. 그러나 그런다고 가려던 곳으로 기차가 갑니까? 가려던 목적지로 가려면 선행이 아니라, 기차를 갈아타야죠. 그래야 목적지로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회개는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방향 전환을 해야 바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그랬죠. 회개함으로 바른길을 가게 되었죠.
3> 자신의 소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이사야에게 하나님은 제단 숯불로 정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소명은 죄용서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죄용서 다음에는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된 이후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군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용서를 받고, 사명을 받죠.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제 하나님과 대화가 되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마음이 생기고,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가 런던의 어떤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그가 들어오자, 사람들이 식사하다 말고 일어서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모두 그를 존경하기 때문이죠. 그때 마당을 쓸던 식당의 하인이 그 광경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자 셰익스피어가 하인의 한숨 소리를 듣고는 밖으로 나가서 왜 한숨을 내쉬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인이 하는 말이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누구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누구는 식당의 마당이나 쓸고 있으니 나 자신이 한심해서 그렇죠.”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이보게 그런 것이 아니야! 자네는 식당의 마당을 쓸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는 거야!”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면 마당을 쓰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죠. 무슨 일이든, 소명감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바르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영국 여왕이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대관식을 할 때 감동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여왕의 머리에 왕관이 씌워지기 바로 직전에 캔터베리 대주교가 성당 안의 동서남북, 각 방향의 청중들을 향하여 네 번 소리를 지른다고 합니다. “귀빈 여러분! 저는 이분이 영국 여왕임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분에게 기꺼이 충성을 맹세하겠습니까?” 이렇게 대주교가 물을 때마다 청중은 충성을 맹세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왕관이 여왕의 머리에 씌워진다고 하죠.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믿습니까? 하나님께 기꺼이 충성을 다하시겠습니까? 충성을 다짐해야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