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7:1-10

사람들은 좋은 것을 추구하죠. 좋은 직장, 좋은 환경, 좋은 배우자를 찾는 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어느 분은 신랑을 구하는데 “저는 아무것도 안 봐요. 의사면 돼요.”라고 하는데요. 본다는 겁니까? 안 본다는 겁니까? 본다는 거죠. 이렇게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을 바라는데요. 전7장에는 “~이 ~보다 낫다.”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영어로 말하면 “Better than”이라는 말인데 11번 나옵니다. 이것이 7장의 핵심이죠. 솔로몬이 어떤 것을 말하고 있을까요?

1>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합니다.

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여기 “아름다운 이름”은 무슨 뜻일까요? “이름이 예쁘네요. 이름을 예쁘게 잘 지었네요.” 이런 말일까요? 이런 뜻이 아니고, 사람의 인격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가룟유다, 이완용” 그러면 어떤 생각이 나죠? 배신자란 생각이 떠오르죠. 반면에 “아브라함, 이순신” 그러면 다른 이미지가 떠오르죠. 이름이 아름답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이름이 무엇보다 낫다고 하죠?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합니다. 여기 “기름”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재산을 대표하는 말인데요. 아름다운 이름이 기름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명예가 돈보다 낫다는 말이죠.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명예, 인격보다 돈이 낫다고 믿는 사람도 많죠.

어떤 분은 나이가 들면서 남편보다 돈이 좋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는 하죠. 그러나 본문에는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하는데요. 돈보다 아름다운 인격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기름보다 이름을 선택한 사람이 있죠. 바로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기름을 예수님께 부어드렸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많은 핀잔을 들었습니다. 기름을 팔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데 그렇게 허비하냐고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마리아의 일이 기억되리라고 도리어 칭찬하셨죠. 돈보다 헌신을 통한 그 이름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이름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 이름부터 바꾸어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셨죠. 아브람이라는 말의 뜻은 “높은 아버지”라는 뜻이지만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의 아버지”라는 뜻이죠.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아버지, 즉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로, 믿음의 아버지로 이름을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사래는 사라로 바꾸어주셨고, 야곱도 이스라엘로 바꾸셨습니다. 의미가 있죠. 심심풀이로 바꾼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는 거죠.

2>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고 합니다.

1-2=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라고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빨리 죽으라는 말일까요? 이 말은 죽음 자체가 더 좋다는 말이 아니죠. 출생 이후에 사는 세상과 죽은 다음에 살게 될 세상을 비교해 볼 때 어디가 낫다는 말입니까? 사후의 세계가 있고, 좋다는 말씀이죠.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우리는 잔치집을 좋아하지만,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다고 하는데요. 초상집에 가면 무엇이 나을까요? 초상집에 가면 철학가가 된다고 하죠. 나도 죽을 텐데 죽음 저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런 깊은 생각을 해본다는 거죠. “잔치는 끝나고 나면 남은 것이 배탈밖에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나는데, 초상집에 다녀오면 인생을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좋다는 겁니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고 합니다.

사람은 웃어야 할 때 웃어야 합니다. 웃음은 건강에 좋다고 하죠. 그러나 어떤 사람이 안 건강할까요? 웃어야 할 때 안 웃는 사람입니다. 웃기면 웃어야 하는데 근육이 마비되어서 못 웃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건강이 안 좋다는 거죠. 그러나 때로는 슬픔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눈물을 흘릴 때 마음이 치료가 되기도 하죠.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병이 있어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면 환자를 울리기도 하는데요. 그것은 치료의 방법이기도 하죠. 이런 치료 방법이 개발되기도 전에 벌써 솔로몬은 이 방법을 알았다는 거죠.

4> 책망이 노래보다 낫다고 합니다.

5=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말씀을 읽고 “책망을 많이 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오해죠. 이 말씀은 의미가 없는 노래, 덕이 안되는 노래보다는 지혜가 있는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죠. “제가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잘 지도해주십시오.”라고 하는데 정말로 지도하면, 기분이 나쁘다고 하죠. 그래서 남을 지도한다거나, 가르친다거나, 충고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좋은 충고는 소중한 것입니다.

5> 끝이 시작보다 낫다고 합니다.

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한국 사람들은 시작을 좋아하죠. 시작을 얼마나 거창하게 벌입니까? 그러나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교회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이름을 얼마나 거창하게 달죠? “아세아교회” “세계선교교회”, “세계중앙교회”, 제일 흔한 이름이 “00제일교회”라고 하죠. 세계의 제일, 세계의 중앙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제일도 좋고, 중앙도 좋지만 시작보다 마무리를 잘해야죠. 시작보다 끝에 아름다운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결산할 것인가?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내 일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이것은 아주 중요하죠.

6>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낫다고 합니다.

교만하면 참지 못하고, 끝을 제대로 맺지 못합니다. 사울이 전쟁하기 전에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선지자가 오지 않으니까 참지 못하고, 선지자를 대신하여 자기가 제사를 드리죠.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뭐라고 하죠? “잘했습니다. 당신은 좋은 왕이십니다.” 그랬나요? 당신의 시대가 끝났다고 책망하죠. 비극이었습니다.

약1:3-4=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인내입니다. 인내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때로는 시련을 허용하십니다. 그럴 때는 인내해야죠. 그래야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내하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