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30:1-9
잠30장은 아굴의 잠언이라고 하는데요. 솔로몬을 돕는 현자 중의 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잠언을 이디엘과 우갈에게 말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아굴의 제자들이라는 추측이 있을 뿐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아굴도 본문에만 나오는 사람인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현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굴은 어떤 신앙의 사람이었습니까?
1>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2=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자신을 짐승처럼 낮추며 자랑할 것도, 보여줄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낮추고 있죠. 그뿐 아니라, 지혜도, 지식도 없어서 하나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죄인이라고 자기를 낮추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가 나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하면 기분이 상하죠. 그런데 아굴은 스스로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자신은 짐승만도 못하다고 하는데 아주 겸손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무디 선생이 전도하고 있는데 무디를 시기하던 어떤 사람이 주변의 사람들이 들으라고 큰소리로 “무디 선생! 당신은 과거에 구두 수선쟁이였죠?”라고 모욕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랬는데도 무디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예, 저는 구두를 수선하기 전에 먼저 구두방에서 심부름을 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이렇게 말할 수 없겠죠.
창18:27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자신을 “티끌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죠. 고전15:8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사람”이라고 했고, 딤전1:15절에서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이렇게 낮추는 사람이 큰사람인 것입니다. 아굴도 자신을 짐승만도 못하다고 낮추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하나님을 높이고 있죠.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아굴은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말씀을 이렇게 믿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아굴은 하나님의 말씀이 다 순전하다고 했는데요. 그렇죠. 어떤 것은 순수하고, 어떤 것은 불순한 것이 아니라, 다 순수하고, 다 순결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순전하시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도 다 거룩한 것입니다.
6=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모자라면 더해야죠.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모자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할 것이 없죠.
신4: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지키라.”
계22:l8-19=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 하실 터이요,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죠. 말씀을 순전하게 그대로 믿으라는 겁니다. 모든 것에 말씀이 우선입니다. 신유의 은사나 영적인 체험이나 그 어느 것도 말씀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총을 쏘는 훈련을 받지 않고, 총을 들고 있으면 얼마나 위험하겠어요? 잘못하면 오발하고, 자신도, 남도 다치게 되죠. 은사를 받고 실수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그럴까요?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훈련 없이 총을 든 사람과 같아서 아무 데나 총을 쏘기 때문에 사고가 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4> 바르게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굴이 무엇을 기도하였습니까?
첫째,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내가 거짓과 허탄을 멀리하겠습니다.”가 아니죠.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이것을 멀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부패하고, 타락한 자신을 알기 때문이죠. 자기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니까 기도하는 겁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할 때도 그렇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으로 되는 거죠.
둘째, 물질의 종이 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8=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얼마나 훌륭한 기도입니까? 가난하여 도적질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어떻게 하나? 너무 부하여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이것을 염려한다는 거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면 좋겠죠. 물질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쓸 줄 아는 부자가 되면 좋겠죠. 내 지갑만 채우고, 내 상자에 패물만 가득 채우는 그런 부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리는 부자가 되면 좋죠. 아굴의 기도가 이런 기도인데요. 우리도 이런 성숙한 믿음의 부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