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26:13-16

오늘 본문은 게으름에 대한 말씀인데요. 성경은 게으름에 대하여 좋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잠19: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누군가 말하기를 “게으름은 살아있는 사람의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게으름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허약하게 만듭니다.

잠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잠20:4=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거둘 때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게으른 사람이 좋은 것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게으른 사람의 특징을 말씀하는데요. 어떤 것이 있다고 하죠?

1> 핑계를 잘 댄다고 합니다.

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길과 거리에는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죠. 거기에 사자가 왜 있겠어요? 일하기 싫으니까 그렇게 핑계를 대는 겁니다.

2> 잠자기만 좋아한다고 합니다.

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이 말이 무슨 말이죠?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문짝이 돌쩌귀에서만 돌듯이 게으른 자는 침실에서만 뒹군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쉬운 성경은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 돌 듯, 게으름뱅이는 침대에서만 뒹군다.”라고 번역했죠. 이처럼 게으른 사람은 잠자기만 좋아한다는 건데요. 맨날 침실, 침대에서만 맴도니 어떻게 되겠어요?

잠13:21=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헤어진 옷을 입을 것이라.”

일을 피곤하게 하여 깊은 잠이 드는 것은 좋지만 게을러서 맨날 잠만 자면 가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은 지 며칠 후 눈을 떠보니 천국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답니다. 출근하라고 일찍 깨우는 아내도 없었고, 상사의 잔소리도 없었고, 머리를 싸매고 매달려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인이 자리를 비우지 않고, 대기하고 있다가 시중을 들었습니다. 밥을 먹는 것도 하인이 다 먹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평안한 생활도 며칠이 지나니까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는 일이 없으니 지겹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인에게 말했습니다. “내 손으로 무엇이든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그러는데도 하인은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해결되지만 단 하나, 당신이 직접 일하는 것만은 금지되어 있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화를 내며 소리치기를 “그렇다면 차라리 지옥이 낫겠네. 이렇게 심심해서 어떻게 살란 말이냐?”라고 했더니 하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이 “당신은 지금껏 여기가 천국인 줄 아셨나요? 여기가 바로 지옥입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하지 않고, 편안히 쉰다는 것,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일도 하지 않고, 맨날 잠만 자면 좋겠어요?

어느 유명한 스승 밑에 아주 게으른 제자가 있었는데 맨날 잠만 잡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은 날마다 일취월장하는데 이 제자는 늘 제 자리에서 맴 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퇴보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스승은 다음과 같은 말을 제자에게 외우라고 했습니다. “뛰는 것보다 걷는 것이 편하고, 걷는 것보다 서는 것이 편하고, 서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편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 누워있는 것이 편하고, 누워있는 것보다 잠자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편하고 싶으면 죽어야 하느니라.” 여러분, 게으르면 죽습니다.

3> 일 자체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15=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게으름의 특징인데요. 게으른 사람에게 바울은 뭐라고 하죠? “일하기를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죠. 그런데 이런 사람일수록 먹는 것은 또 더 좋아하죠.

4> 스스로 지혜로운 척한다고 합니다.

16=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게으른 사람치고, 자신을 미련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도 그렇죠.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은 트집을 덜 잡습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트집을 더 잘 잡죠. 왜 그럴까요? 일을 안 해봤기 때문에 일이 힘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은 일이 어려운지를 알기 때문에 말을 덜 하죠. 트집을 잡고,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은 일은 하지 않고, 말썽만 부리죠. 손이 게으른 사람은 입만 부지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주님의 일에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주의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마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에서 게으름을 피운 사람은 무서운 책망을 듣죠.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책망을 듣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지 못하죠. 그래서 주의 일에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계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내가 아노라.”

에베소교회에 주신 말씀인데요. 오늘 우리도 주님의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열심히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상급으로 연결되죠.

2> 주님을 아는 일에도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벧후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말라.”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랬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그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였기에 칭찬을 받았죠.

3> 구하는 일에도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구하는 열심이 있어야 받을 수가 있죠. 구하지 않고 어떻게 얻겠습니까?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두드리는 열심이 있어야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두드릴 때 축복의 문, 치료의 문, 승리의 문이 열리죠. 두드리지도 않는데 어떻게 열리겠어요?

찾으라! 그러면 만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찾는 일에도 열심이 있어야죠. 찾지도 않는데 어떻게 만나고, 주님을 만남이 없이 어떻게 복을 받겠습니까?

사람은 언제든지 심는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게으른 사람이 얻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죠. 그러므로 부지런함으로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