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22:1-6
우리는 살면서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것들이 있어야 할까요?
1> 건강과 재물이 필요합니다.
건강은 말할 필요도 없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죠. 건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재물도 필요하죠. 그래서 직업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야 합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죠.
2> 지식과 명예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성장이 멈추죠.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재물도 필요하지만, 명예는 더욱 좋은 것입니다. 군대에서도 명예롭게 퇴직해야 혜택을 받죠. 불명예스럽게 그만두면 혜택이 없지 않습니까?
3> 겸손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은사와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고, 겸손하지 않으면 헛된 것입니다.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4>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생과 은총입니다.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영생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죠.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리 재물과 명예와 그 무엇을 가져도 영생을 얻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5> 자녀들을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자녀를 안 주시면 할 수 없지만 주셨다면 믿음으로 잘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 양육의 책임이 있습니다.
엡6:4=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
여기의 “교훈과 훈계”, “양육”이라는 단어는 모두 적극적인 훈련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들이죠. 자녀 양육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죠. 낳고, 데리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르게 자라도록 어떻게 해야죠? 성경이 가르치는 자녀 양육의 원리가 무엇일까요?
1> 부모가 양육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엡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
자녀 양육을 누구에게 부탁하고 있죠? 아비들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맡기고, 교회에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먼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아비들아”라고 하는데요. 아버지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들은 책임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죠. 어머니들은 기본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죠. 그런 가운데 아버지들도 함께 책임을 지라는 말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말하죠. 오늘날 가정의 불행의 뿌리는 가정에서의 “아버지 부재 현상”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의 아빠들에게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요. 독수리아빠, 기러기아빠, 펭귄아빠가 있다고 하죠. 독수리아빠는 언제나 자녀와 함께 있어 주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자녀에게 날아가는 아빠이고, 기러기아빠는 일 년에 겨우 두세 번 자녀들에게 얼굴만 보여주는 아빠이고, 펭귄아빠는 아내와 자녀들에게서 팽 당한 아빠라고 합니다.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까요?
2>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엡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이 말은 징계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죠. 징계는 필요하나, 과잉 징계를 하지 말라는 거죠. 언어 폭력이나 물리적인 폭력을 쓰지 말라는 거죠.
3> 말씀 안에서 양육하라고 합니다.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바울도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고 하죠. 여기서 말하는 주의 교양과 훈계가 무엇이죠? “교양”이 “예방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단어라면, “훈계”는 “치료하는 언어”를 가르치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녀를 양육할 때 말과 행동이 주의 뜻에 맞아야 한다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가르칠 수가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모범을 보여야죠. 그래야 자녀들이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현대교육에서는 “모델링”이라고 하죠. 부모가 모범적으로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도에 유명한 간디가 있었죠. 간디 집안의 가훈은 “정직”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간디의 손자 “아룬”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자동차 정비소에 가서 차를 수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오후 5시까지 사무실로 오기로 했는데 정오에 수리가 끝나서 시간이 많이 남았죠. 그래서 극장에 갔다가 약속 시간을 넘겼습니다. 오후 6시 5분에 늦게 도착했죠. 그러자 아버지가 묻기를 “왜, 늦었느냐?”라고 하자, 아룬이 얼떨결에 “차 수리가 늦었다”라고 대답했죠.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정비소에 전화하여 언제 정비가 끝났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알았다, 너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가거라. 나는 집까지 걸어서 가야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집까지는 먼 거리였습니다. 아들이 “왜 걸어가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얼마나 너를 잘못 교육했는지 반성해야겠다. 아들아, 나를 용서해다오. 나는 걸어가면서 정직의 교훈을 더 묵상해야 하겠다.” 그날 이후, “아룬”은 일생을 통해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