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37:1-9

시137편은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온 다음에 그때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포로 생활을 회상하며 지은 비탄 시이자, 슬픈 애가입니다.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거기 앉아서”라는 말은 잠시 앉아 있는 상태를 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착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강 주변에 이스라엘 포로들을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했다고 해석합니다. 아무튼 포로로 끌려가서 서러운 생활을 하며 예루살렘을 생각하고, 슬프게 울었다는 말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어떤 수모를 겪었습니까?

3=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믿는 사람에게 자신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찬송가 하나 불러봐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위해 부르는 것이지 자기들의 기쁨을 위해 찬송가를 불러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거죠.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하는 행동이죠. 너무나 건방진 행동입니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수금”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쓰는 악기인데 수금을 어디에 걸었다고 하죠? 시인은 “버드나무에 걸었다.”라고 했는데요. 이 말은 연주를 중단했다는 말입니다. 연주를 중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자기들의 흥을 위해 불러달라고 하는데 찬송가를 그런 식으로 불러서 되겠습니까? 당연히 거부해야죠. 하나님께 부를 거룩한 찬송을 이방인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부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4=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여기서 “이방”은 “낯선 땅”을 말하는데요. 유대인들은 이방 땅을 불결한 땅으로 여기고, 심지어 음식까지도 불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불결한 땅에서 불결한 사람들의 흥을 위해 거룩한 하나님의 노래를 어떻게 부르겠어요? 5-6절도 계속되는 말씀인데요. 차라리 재주를 잃고, 혀가 입천장에 붙는 것이 낫겠다고 하죠.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과거 예루살렘 거민이 포로로 끌려갈 때 에돔 족속이 예루살렘을 무자비하게 조롱했죠. 그런 에돔을 벌해주시기를 바라는 말씀입니다.

8=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하나님께서 보복해 주기를 바라는 말씀인데요. 자신들이 복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죠.

9=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어린 것들”은 “젖먹이들”을 의미하는데요. 하나님의 공정한 판단을 요청하는 말입니다. 젖먹이들까지 죽인다는 것은 야만스럽지만 8절 말씀처럼 공평한 심판을 간구하는 말씀이죠.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고, 모독한 바벨론이 파멸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편을 보면 복수를 요구하는 내용이 있는데요. 원수에 대한 복수를 구하는 시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시편에서 말하는 원수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복수에 대한 시편은 하나님의 정의를 바라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을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자신이 받은 손해에 대한 복수나 판결을 당연히 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당하였으니, 너도 당해야 한다는 거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겁니다. 억울하게 손해를 당했는데 복수를 요구할 수도 있겠죠.

둘째, 손해를 당했어도 복수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고, 어떤 악에도 대항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셋째, 개념은 둘째 유형과 비슷하지만, 정당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해자에게 변화된 삶을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하죠. 교회에서 징계가 필요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경각심을 주기도 하지만, 본인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징계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용서하고, 덮어주는 것이 상책은 아니죠.

그러나 개인적인 복수나 증오심에서 나오는 행위는 성경은 금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죠.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죠. 이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