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0:1-7

시120-134편은 표제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죠. 이 노래들은 유대인들이 절기 때에 성전에 올라가면서 불렀던 찬송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120편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 가운데 거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여기 ‘부르짖었다’와 ‘응답하셨다’라는 두 동사를 보면 번역마다 조금 다르게 했는데요. KJV에는 “cried…heard”로 과거형으로 번역했고, NIV는 “call…answer”로 현재형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부르짖었다’라는 단어는 완료형이고, ‘응답하셨다’라는 단어는 미완료형입니다. 그래서 과거냐? 현재냐? 따지기보다는 과거에 경험한 기도 응답을 현재와 미래에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기자의 고백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

“궤사한 혀”라는 말은 “속이는 혀”라는 뜻인데요. 속임수와 이중성이 가득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거짓된 입술”과 같은 말로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들에게서 자신을 건져달라고 구하고 있죠.

3= “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할꼬”

이 말씀은 “궤사한 자 위에 쌓일 재앙이 무엇일까? 너라는 사람은 어떠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까?” 이런 말이죠. 비슷한 표현이 삼상3:17, 20:13절에도 있는데요.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말인데요. 3절도 궤사한 혀를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4=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

거짓되고 궤사한 혀에 대한 징벌을 말씀하는데요. “로뎀나무 숯불”과 같다고 하죠. 무슨 말일까요? 로뎀나무의 뿌리는 연료로 사용되었는데 일단 불을 붙이면 오랫동안 열기를 유지하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행객들이 로뎀나무로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그곳을 떠난 지 1년 후에 다시 와보니 그때까지 불씨가 꺼지지 않고 살아있더라.” 말이 안 되지만 그만큼 불씨가 오래간다는 말로 궤사한 혀에 대한 심판이 지속된다는 말씀이죠.

5= “메섹에 유하며 게달의 장막 중에 거하는 것이 내게 화로다.”

메섹은 창10:2절에 보면 두발과 함께 나오는 자로 코카사스의 남동쪽에 거주했던 야만족입니다. 게달은 창25:13절에 나오는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아라비안 반도를 누비며 약탈을 일삼던 자들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이방 땅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노래입니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

이 말씀처럼 성도들은 친절하고 화평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세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1> 기도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성도들은 환난 중에서도 기도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시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건져주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2>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3-4= “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할꼬,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낼 때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죠. 양이 이리 가운데 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죠. 그럼에도 예수님은 양들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악한 세상에 살고 있는데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세상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화평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화평을 추구하는데 사람들은 안 그러죠. 거짓말과 궤사한 말로 괴롭히고, 날마다 싸움을 걸어오죠.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

세상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과 싸우지 아니하고, 오히려 참고, 견디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판단해 주시기를 바라며 화평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고, 눈물이 없이는 못 가는 좁은 길이겠죠.

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어디를 가나 peacemaker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