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79:1-13

본시의 배경은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그때의 처절한 상황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한 시로 보이는데요. 1-4절은 이스라엘의 처절함을 말씀드리고, 5-13절은 원수의 손에서 구해달라는 기도인데요.

시79편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1> 형벌은 죄 때문에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냥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니죠. 유다가 이렇게 망한 것은 다 죄 때문이었습니다.

1= “열방이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으로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된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2= “주의 종들의 시체를 새들의 밥으로 주고”
3= “피가 강을 이루고”
4= “이웃에게 비방거리,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그때의 상황은 시74편에서도 말씀하고 있죠.

시74:3=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이방인들이 성전을 짓밟았죠.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인데 바벨론 사람들이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이 도끼로 성전의 기물을 파괴하였죠.

시74:5= “저희는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얼마나 잔인무도합니까? 성전을 파괴하고, 기물을 부수고, 불을 질렀습니다.

시74:6= “저희가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시74:7=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런데도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불확실하였습니다.

시74:9= “표적이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다시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나 이런 수치가 더 있을지 아는 자가 없죠. 너무나 답답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의 벌이 이렇게 고통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죠?

8= “우리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사오니 주의 긍휼하심으로 속히 우리를 영접하소서.”

유다가 이렇게 된 것은 우상숭배 때문이지만 그래도 염치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해결의 기미가 보이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기 때문에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거죠. “주의 긍휼하심으로 속히 우리를 영접하소서!” 마땅히 죽을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겁니다.

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하나님도 체면이 있으시죠. 선민이 망하면 좋으시겠어요? 이스라엘의 수치는 하나님의 수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겁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모자라서 바벨론에 망하도록 두신 것이 아니죠.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수치와 조롱을 당하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바로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징계는 사랑하기 때문에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대부분의 환난과 고통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멋대로 살고, 죄를 짓게 될 때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미워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라고 사랑의 채찍으로 고통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세요. 역경 속에 있을 때는 죄를 짓지 않았죠. 도리어 평안할 때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밧세바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병들어 죽어가게 되자 다윗은 일주일이나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결국 죽고 말았죠. 그러자 다윗은 “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12:11=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환난과 고통과 실패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한 것이므로 우리에게 유익하고, 축복이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11-12절이죠. 원수를 갚아달라고 호소하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시고, 주의 백성들을 구해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이방 나라를 채찍으로 사용하시고, 그 후에는 반드시 그 채찍도 부러뜨리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모도 그렇잖아요. 자식을 위해 채찍을 들지, 채찍을 위해 자식을 두는 것이 아니죠.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는 바벨론보다는 유다가 더 예쁘시겠죠. 그래서 바벨론을 제거하시고, 유다를 회복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징계의 때에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