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77:1-9
시77편은 “절망 중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로 보는데요. 시인은 극심한 절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 “환난 날에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부르짖습니다. 시애틀을 “잠을 못 이루는 시애틀”이라고 하죠. 그래서 이번 총회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주제로 사진 컨테스트-공모전도 했습니다만 시인은 절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3=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4=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이 정도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알 수 있겠죠. 이렇게 믿음의 사람도 절망할 때가 있다는 건데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인자하심이 다하였는가?”
9=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러면 더 절망이 되죠. 이럴 때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5= “내가 옛날, 곧 이전 해를 생각하였사오며”
10= “이는 내가 곧 연약함이라.”
자신을 돌아보니 연약함을 깨닫게 되죠. 연약함을 깨달으면 누구를 의지하게 될까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11-12=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고,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회상하였는데 그러면 힘이 나죠. 그래서 우리는 절망적인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떠올리며 일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오른손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10-11=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리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16-20절을 보면 출애굽 역사를 말씀하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절망 때문에 기도하고, 절망 때문에 잊고 있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면 절망은 새로운 은혜의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적인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13= “하나님과 같이 큰 신이 누구오니이까?”
14= “민족들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15=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하셨나이다.”
20= “주의 백성을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하나님은 큰 신이시고, 능력이 무한하시고, 주의 백성을 구원하셨고, 인도하시는 분이시죠.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하시고 함께하십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고후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살후2:16=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하나님은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분이시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한 어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조업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파도가 치고, 비가 쏟아져 내리고, 캄캄한 밤이 되자, 돌아가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기도하였는데요. 저 멀리에서 작은 불빛이 보이더니 불이 점점 커져서 불기둥이 되어 솟아올랐습니다. 그 불기둥 때문에 방향을 잡고 돌아왔는데요. 돌아와 보니 자기 집이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두 아들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죠. “감사합니다. 우리 집에 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바다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난은 예상치 못한 복을 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화위복이 되게 하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죠.
주석가 중에 윌리엄 바클레이 목사님이 있습니다. 하루는 우울증에 시달리던 여인을 방문했는데 그 여인이 목사님에게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말했는데 청력이 좋지 않은 목사님은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다시 물을 수도 없고, 다만 여인에게 용기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다는 말이 “참 좋은 생각이네요. 저도 그보다 더 좋은 생각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이 웃고 말았습니다. 죽겠다고 하는데 참 좋은 생각이라고 하니까 웃음밖에 더 나오겠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말을 듣고, 극단적인 행동을 포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음에 치유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그런 실수에도 누가 역사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거죠.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고, 절망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힘을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