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74:1-11
시74편의 제목을 보면 “아삽의 마스길”이라고 되어 있죠. “마스길”은 “교훈시”라는 말인데요. 그런데 아삽은 다윗시대의 사람이고, 본 시의 배경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이 멸망한 시대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다윗 시대와 본 시의 배경은 400년의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본 시를 아삽의 마스길이라고 했을까요? 그래서 아삽은 다윗 시대의 아삽이 아니라, 아삽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로 보아야 합니다. 아삽의 후손들은 이사야 때부터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까지 살았는데요. 본 시는 아삽의 어느 후손의 시로 보아야겠죠. 아무튼 위기 상황에서 구원을 호소하는 시인데요.
당시의 상황이 어떠하다고 합니까?
1>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3=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거룩한 성전을 짓밟았죠.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인데요. 이방인 바벨론 사람들이 파괴하였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2> 원수들이 득세하였습니다.
5= “저희는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얼마나 잔인무도합니까? 성전을 파괴하고, 기물을 부수고, 불을 질렀죠.
6= “저희가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7=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이렇게 원수들이 방자하므로 슬픔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호소하는 겁니다.
3> 미래가 불확실하였습니다.
9= “표적이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다시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앞이 보이지를 않죠. 미래를 아는 자가 없습니다.
10=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훼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그래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데요. 시인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고 있을까요?
1>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고 고백합니다.
12=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인간에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고, 나의 편이라면 무엇이 두렵겠어요? 이렇게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을 믿었습니다. 예전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이죠? 13절은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신 일을 회상하고, 15절은 반석에서 물을 나게 하셔서 마시게 하신 일을 회상하고 있죠. 그러니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을 왕으로 믿는다면 절망 중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나의 주이심을 고백합니다.
16= “낮이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예비하셨으며”
우주와 자연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흑암 중에서도 소망을 가지게 되는 거죠.
3> 생명을 하나님께 부탁하고 있습니다.
19=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마소서.”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절망스러울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절망 중에도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버림을 받은 것처럼 느낄 때도 있겠죠. 아삽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들인데 성전이 훼파되는 아픔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호소하죠.
왜 이렇습니까? 언제까지 이런 꼴을 봐야 합니까? 이런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해야 합니다.
아삽의 후손은 하나님께 모든 상황을 아뢰며,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40년을 이끌어주셨고, 결국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려운 일이 일어났지만 앞으로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살아야 합니다.
어느 맹인의 간증입니다. 길을 갈 때 바로 앞에서 “앞에 물이 있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이렇게 가르쳐주어야 도움이 되지, “100m 앞에 뭐가 있어, 200m 앞에 뭐가 있어.”라고 하는 말은 도움이 안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도 우리에게 한걸음, 한걸음 인도하십니다. “10년 후에 이렇게 될 거야, 20년 후는 이럴 거야!” 그러고 마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도록 힘써야 합니다.
영국의 존 번연 목사님이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는데요. 어느 날 한 간수가 목사님에게 와서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만나고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인심을 쓴 거죠. 그래서 집으로 가다가 목사님이 돌아왔습니다. 간수가 왜 오셨냐고 묻자 “호의는 정말 고맙지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돌아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국왕이 감옥에 시찰을 나왔습니다. 그때 존 번연 목사님이 돌아오지 않고, 감옥에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런 다음 간수가 목사님에게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돌아오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세요.”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내 고집이나, 내 방법대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죠. 날마다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