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3:34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을 이번 주간에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오늘 본문인데요.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은 중요하고, 그리고 그 말은 그의 성품이나 관심을 보여줍니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으로 “내가 어느 친구에게 닭 한 마리 빚진 것이 있는데 꼭 갚아 달라”는 말을 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죠.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는 “나는 이제 죽는다. 나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 나는 지옥으로 간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원수들을 용서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셨죠. 우리도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데요. 용서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기도해야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가슴이 아픈데 용서가 되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여 용서하는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나,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죠. 그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용서하는 마음을 얻습니다.

2> 인간의 본성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살죠. 그래서 남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 유대 정치지도자들, 모두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고 예수님을 죽이잖아요. 자기 위주로 살았습니다.

조카사위가 경찰인데요. 가게에서 행패를 부린다는 민원이 접수되어 출동했더니 25살 정도 된 청년이 행패를 부리는데 체포하는 중에 실랑이를 벌이다가 조카사위의 허벅지를 이빨로 물어뜯어서 상처를 입었습니다. 미국 같으면 경찰이 그렇게 당하지 않죠. 한국은 희한한 나라죠. 사람들이 경찰서에 들어가 행패를 부리고, 경찰을 구타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범죄자의 인권 때문에 함부로 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범죄자들도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그러니 피해자를 “피해 호소자”라는 이상한 말도 나오죠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지 않습니까? 저들의 무지를 안타까워하시며 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알아야 용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죠. 그래서 순종해야 하는데요. 사람들은 때로는 “저런 인간을 왜 안 데리고 가시나? 천벌이나 벼락을 내리지!”라고 하는데요. 무서운 저주죠. 그런데 성경은 용서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잖아요. 이 말은 무한대로 용서하라는 말씀인데요.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이죠.

어느 집에서 형과 동생이 싸웠습니다. 그때 엄마가 “용서하는 녀석이 형이다.”라고 했더니 형이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미안하다.” 그런데 동생이 손을 내밀었다면 누가 형이죠? 동생이 형이 되는 것입니다. 동생은 원래 동생이니까 동생이라는 말을 들어도 상관이 없겠지만 형이 ‘동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곤란하겠죠. “용서하는 사람이 형이다.” 그러니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이 용서하는 것이 옳다는 어른들의 말이죠.

네 사람의 상인이 똑같이 투자하여 목화를 구입하고, 창고에 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창고에 쥐가 많아서 목화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고양이 한 마리를 사 놓기로 하고, 네 사람이 돈을 내어 고양이를 샀습니다. 그리고 네 사람이 공동주인이라는 뜻에서 고양이 네 다리에 각자의 이름을 써놓았는데요. 어느 날 고양이가 왼쪽 뒷다리를 다쳤습니다. 그래서 그 다리의 주인이 기름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주었는데요. 이 고양이가 난로에 너무 가까이 있다가 붕대에 불이 붙었고, 아프다고 뛰어다니다 목화 더미에 불을 붙이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피해를 보았죠. 그러자 세 사람의 상인이 붕대를 감은 다리의 주인을 고소하였습니다. 붕대를 감은 다리 때문에 불이 났으니 붕대를 감은 다리의 주인이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판장은 이렇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붕대를 감은 다리에 불이 붙었을 때 그 다리는 다쳐서 움직이지를 못하고, 나머지 세 다리가 뛰어다니다가 목화 더미로 불을 옮겼으므로 배상은 나머지 세 다리의 주인이 해야 한다.” 그렇죠. 불이 붙은 다리는 아파서 가만히 있었고, 다른 다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불을 붙었죠. 무슨 이야기입니까? 누가 누구를 고소할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감싸주고, 서로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랍비 힐렐은 “당신이 그 사람의 환경이나 입장이 될 때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한다면 우리에게는 용서하지 못할 대상은 없는 것입니다. “용서하라.” 이것은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실천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가르침을 기억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