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53:1-6

시53편은 무신론자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말씀인데요. 5절을 빼고는 14편과 같은 내용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죠?

1=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3=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4=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며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죠.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하나님께서 살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1>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어리석다면 하나님을 믿고, 찾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죠.

2= “여호와께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지각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4= “저희가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 품으로 오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어린 아들이 놀다가 도자기를 깼습니다. 엄마가 매를 대니까 애가 엄마의 목을 껴안고 울면서 “엄마가 맞아봐. 얼마나 아픈데…아들의 다리에서 피가 나면 좋겠어?”라고 하며 매달립니다. 그러는데 때릴 수 있겠어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저를 버리지 마세요.” 이렇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하나님이 버리겠어요?

이와 같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1>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6=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구원자는 하나님이시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십니다.

6=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구원받은 백성은 기뻐할 수밖에 없죠.

2=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하나님께서 인생을 살피신다고 하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신다는 믿음을 갖고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을 찾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데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하나님이 없죠.

어떤 청년이 하나님을 보고 싶다고 목사님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청년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저 태양을 계속 쳐다보면 하나님이 보일 거야.”라고 하니까 눈이 부셔서 못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태양도 제대로 못 보면서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을 어떻게 보려고 하는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못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보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1666년, 런던에 대화재가 있었습니다. 도시가 불에 탔고, 부자들은 재산을 날렸습니다. 그로부터 47년이 지난 화재기념식 연설에서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때의 대화재 사건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런던에서 추방한 지 3, 4년 후에 일어났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진실한 종들과 신자들에게 박해한 만큼 갚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당시에 영국에서는 교인들을 박해하는 ‘5마일 법령’이 시행되었는데요. 그 법령으로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교회에서, 집에서 쫓겨나고, 런던 5마일 이내에서는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화재가 일어났으니 누가 피해를 보았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피성이 되시죠. 하나님의 품으로 가면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도피성이 있었죠. 부지 중에 사람을 죽이는 실수가 있었을 때 죽은 자의 가족에게 보복 사형을 당하는 것을 보호하고, 정당한 재판을 받을 때까지 보호하기 위하여 여섯 개의 도피성을 만들었죠. 그 도피성은 장차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철칙으로 모든 죄인은 죽어야 하는데 모든 죄인의 피난처가 될 것에 대한 예표요, 그림자입니다. 그런데 그 도성들의 이름을 보면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게데스입니다. 게데스(קֶדֶש)는 “거룩함”, “신성한 곳”, “성소”를 뜻하는데요. 게데스는 납달리 지파에 속한 도피성이고, 레위인이 사는 곳이죠.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성소가 되시는 분이시죠.

둘째는 세겜입니다. 세겜(שְׁכֶם)은 “어깨”, “목덜미”를 뜻하는데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라는 두 어깨 사이에 위치한 도시로 가나안의 중요 거점이자, 아브라함이 가나안 입성 후 처음 멈춘 곳이고, 비옥한 농경지와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들을 어깨에 메고 오는 선한 목자가 되시는 분이시죠.

셋째는 헤브론입니다. 헤브론(חֶבְרוֹן)은 “연합”, “동맹”, “우정” 또는 “친구”라는 의미를 지닌 유다의 고대 도시입니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매입해 가족 묘지로 삼은 곳이자, 다윗이 유다 왕으로 즉위한 장소인데요. 예수님은 단절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사랑의 부자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길이 되시는 분이시죠.

넷째는 베셀입니다. 베셀(בֶּצֶר)은 르우벤 지파 지역에 위치했던 도피성으로, “요새”라는 뜻을 지닌 곳이죠. 노아 홍수 때 유일한 구원의 요새는 방주였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요새가 되시죠.

다섯째는 라못입니다. 라못(רָאמֹת)은 “높음”이라는 뜻으로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높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섯째는 골란입니다. 골란(גולן)은 “성별”이란 뜻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과 정욕과 사단의 오염에서 건져 성별해주신 분이죠.

아무튼 우리의 요새, 도피성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