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5:1-10
시35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피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기록된 시인데요. 자신을 모함하여 사울의 판단을 흐리게 하던 사울의 측근들을 원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들 때문에 고난을 많이 받았는데요. 이때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실까요?
1> 다윗을 위하여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1절에서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적으로, 4절에서는 강도나 맹수처럼 상해하는 자로, 7절은 짐승을 잡으려고 그물을 치는 사냥꾼으로
묘사하였지만 다윗은 이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주시기 때문이죠. 방패가 되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귀족 출신이고, 또 작가로서도 성공하여 부러워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족이 없었다고 하죠. 죄에 대한 공포로 불안한 나날을 보냈는데요. 어느 날 시골에 사는 한 농부를 만났는데 그 농부가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물었죠. “당신의 평화로움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때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제 마음은 이렇게 항상 기쁘답니다.” 농부의 이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때부터 정말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하나님을 만남으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까?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맡깁니까? 그러면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롬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항상 하나님 편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대적을 물리쳐주실 것입니다.
2>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누명을 뒤집어썼지만 모함하는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죠. 그리고 다윗은 기도만으로도 부족하여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13=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윗에게 은혜로 되돌려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어떻게 하라고 하셨죠?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라고 하셨죠. 그러면 원수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고, 우리에게는 은혜로 갚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롬12:20-21=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마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원수든, 모함하는 자든, 괴롭히는 자든, 그를 위하여 축복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오게 되어있는 겁니다.
3>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3=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24= “공의대로 판단하사 저희로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다윗은 원수를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부탁하죠. 하나님께서 잘못을 바로 잡아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죠. 그래서 우리는 바른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대신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요. 그래서 우리는 그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겁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전쟁터에서 한 병사가 총탄에 맞고 쓰러지자 군목이 달려가서 “죽는 것이 무섭지 않은가?”라고 묻자, 병사는 불쾌하다는 듯이 대답하기를 “전쟁터에서 죽음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두렵다니요? 저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필 죽어가는 이 시간에 제 감정을 건드리십니까?”라고 하자 목사님이 “그러나 자네는 죽음 이후의 일이 준비되어 있는가?”라고 말하자 병사는 한숨을 쉬면서 “목사님, 그것이 나를 두렵게 한답니다. 어쩌면 좋죠?”라고 하였답니다.
그렇죠. 누구에게나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데 어떻게 준비해야죠? 죽음 이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구원이 있고, 용서가 있고,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오지 않으면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환란의 때에는 더욱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우스 다코다에 러쉬모어 산이 있죠. 거기에 뭐가 유명합니까? 워싱턴, 제퍼슨, 루즈벨트, 링컨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조각가 “보그럼”이라는 분이 1927년에 시작하여 14년 만에 완성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작업이 너무 느리다고 불평했죠. 그러나 보그럼은 대작을 완성하고, 몇 달 후에 죽었는데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죠. “적어도 10만 년 동안 사람들이 저 위인들을 바라보며 배울 것입니다. 내 이름도 저기에 함께 있는데 14년은 그렇게 긴 세월이 아닙니다.”
여러분, 세월은 잠깐이죠. 시90:4, 5, 9절을 보면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경점 같고,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습니다.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지혜롭게 써야죠. 하루가 24시간이지만 쓰기에 따라 다르죠. 하루를 한 달같이 쓰는 사람이 있다면, 한 달을 하루 같이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철학자 베이컨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 나이가 젊어도 오래 사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말이죠. 영어에서 현재를 “present”라고 하는데 선물도 “present”라고 합니다. 현재가 선물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현재를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