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2:1-11
시22편에서 말하는 고난은 다윗의 고난을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다윗은 벌레 취급을 당하거나, 수족이 찔리는 일을 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시22편은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의 고난을 예고하는 시를 쓴 것이라고 하죠.마27장, 막15장, 눅23장, 요19장을 보면 시22편에서 예고한 고난이 그대로 나타나죠.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1>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4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얼마나 괴로우면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이때 예수님은 33세 때였는데요. 젊은 나이에 죽는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모하멧은 60세까지 살았고, 소크라테스는 70세를 살았고, 플라톤과 석가는 80세가 넘어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33세에 돌아가셨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은 일찍 죽는다고 억울하고, 괴로워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는 말할 수 없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며 만족스러운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다만 순간적이나마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외면당하시는 고통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2>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가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한다고 하는데요. 예수님이 이런 멸시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당하는 괴로움 가운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조롱당하는 거죠.
2차 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심리학자인 빅토르 플랭클린이 갇혔습니다. 갇힌 사람들이 하루 20g밖에 안 되는 빵을 먹으며, 추위에 떨고, 구둣발로 차이고, 중노동을 하고, 약간의 병세만 보이면 바로 가스실로 들어가 죽는 고통을 받았지만, 그런 중에도 가장 괴로운 것은 개인적으로 조롱을 당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잖습니까? 무시를 당하거나, 조롱당할 때 사람들이 흥분하면 살인까지 한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예수님은 묵묵히 참으셨죠. 침 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으시고,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아도 참으셨습니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가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시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3> 육체적인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16=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양손 양발에는 대못으로 박히고, 옆구리는 창으로 찔리셨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이 말씀도 그대로 이루어졌죠. 이런 고난을 참으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당하면 기뻐하라고 하셨는데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늘에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고난을 받을 때 어떻게 합니까?행5장을 보면, 사도들이 매를 맞으며 산헤드린 공회를 떠날 때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라고 하죠. 사도들은 핍박과 고난을 받아도 기뻐했습니다.
86세인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은 화형을 당하기 전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여! 저를 순교자의 한 부분을 담당할 만한 자로 여기시오니 내가 주를 찬송하옵나이다.” 이렇게 화염 속에서, 몸이 불타는 그 순간에도 기뻐하고, 찬송하면서 죽은 순교자들이 많았습니다. 안이숙 여사도 감옥에서 춥고, 배고프고, 모진 고통을 받았지만 기쁨이 충만했는데 유치장에서 교도소로 이감될 때 일본 순사가 “감옥에 있는 사람 얼굴이 어떻게 왕비같이 빛이 나느냐?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다고 했다는데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신 거죠. 아무튼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잊으면 안 되겠죠.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찬211장을 보면 십자가를 “참혹한 십자가”라고 하는데 왜 참혹할까요? 당시에는 십자가가 부끄러운 십자가였죠. 흉악범이나 대역 죄인을 처형하는 형틀이었기에 십자가에 처형되면 본인과 온 가족이 수치스러워서 세상에 얼굴을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십자가형은 자신과 가족과 가문에 불명예를 가져다주는 치명적인 형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끄러운 십자가가 이제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롬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십자가는 화해와 구원의 십자가죠. 그래서 십자가를 볼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 당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여도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을 묵상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