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19:1-5

오늘 본문은 삼하10장에도 나오는 말씀인데요. 본문에서 세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1> 은혜는 보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2= “다윗이 가로되 하눈의 아비 나하스가 전에 내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 아들 하눈에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고, 사자를 보내어 그 아비 죽은 것을 조상하게 하니라.”

다윗이 나하스에게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는 성경에서 밝히지 않아서 모르지만 학자들 간에는 몇 가지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나하스가 다윗의 즉위식에 특사를 보내 축하해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둘째,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닐 때 나하스가 도움을 주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셋째, 나하스가 다윗에게 베풀었다고 하는 “은총”은 히브리어로 “헤세드-חֶסֶד”인데요. 아마도 상호 간에 불가침조약과 같은 어떤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다윗은 신세를 졌으면 반드시 갚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조문단이 빈손으로는 가지는 않았겠죠. 이렇게 다윗은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 이간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하스가 죽자 다윗이 나하스의 아들 하눈을 위로하려고 조문단을 보냈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왔습니다.

3=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고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를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 신복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다윗의 의도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죠. 신하들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고, 싸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죠.

4=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복들을 잡아 그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일부 학자들은 여기 수염이 깎였다는 말은 수염의 밑 부분이 깎였다는 말이 아니라, 수염을 한쪽만 깎고, 다른 쪽은 그냥 두었다고 해석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신하들이 얼마나 수치를 당했을까요? 그리고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라는 말은 엉덩이가 드러나도록 옷을 싹둑 잘랐다는 말입니다. 신하들의 엉덩이가 보이도록 옷을 잘랐다는 것은 보통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죠. 모욕이었습니다.

다윗이 은혜를 보답하려고, 조문단을 보냈는데 조문단에게 이러면 되겠습니까? 하눈은 신하를 잘못 두었습니다. 이렇게 꼬인 사람을 신하로 두는데 나라가 되겠어요? 무례를 범한 거죠. 우리는 다윗처럼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원수를 맺고,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3> 서로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려는 “마음을 써주는 것”입니다. 마음을 써주고, 신경을 써주는 것이 배려죠.

5= “혹이 다윗에게 가서 그 사람들의 당한 일을 고하니라.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저희를 맞으러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옛날에 양반들이 상투가 잘리면 아주 부끄럽고, 창피하게 여겼습니다. 다윗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죠. 특히 수염이 깎이면 죽을 만큼 수치스러워했죠. 그래서 다윗이 그들을 배려하여 수염이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도록 했는데 다윗의 배려였습니다. 우리도 교회생활을 할 때에 이런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숲속에 사는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걸을 때마다 돌부리에 걸려서 발이 성한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어느 날 그 여우는 토끼 한 마리를 잡고서는 토끼에게 말하기를 “내 눈에 보이는 모든 토끼들을 잡아서 가죽을 벗기고, 길에 깔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토끼는 펄쩍 뛰면서 “여우님, 토끼들을 언제 다 잡아서 도로를 포장하려고 하십니까? 그냥 제 꼬리를 잘라서 가죽신을 만들어 신고 다니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토끼의 희생정신, 배려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죠. 그러나 여우는 자신을 위하여 남을 희생시키겠다는 나쁜 심보를 가졌죠. 사람들은 자신이 불편할 때 남을 희생시켜서 자신이 좋아지기를 바라는데요. 좋은 모습이 아니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좋은 것입니다. 남을 생각하고,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 사람이 돋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그렇죠. 예전에 한때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수 부부’로 기록되었던 영국의 남편 퍼시 애로스미스(105)씨와 아내 플로렌스(100) 부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부부는 1925년 6월1일에 결혼하고, 80년을 함께 살았는데요. 사람들이 이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해로할 수 있었습니까?” 그때 남편은 “저는 항상 아내에게 ‘여보, 사랑해요.’라고 말했다.”고 했고,
아내의 대답은 “저는 남편에게 늘 ‘여보, 미안해요.’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죠? 훈련이 안된 사람들에게는 닭살 돋는 말일수도 있지만 평생 서로를 배려하며 살았다는 말이죠. 이들은 화를 품은 채 잠자리에 들지 않았고, 아무리 다퉜더라도 아침이면 사랑으로 용서하고, 새로운 날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이 부부가 가장 좋아했던 성경말씀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는 엡4:26-27절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장수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