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10:6-14

6= “이와 같이 사울과 그 세 아들과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

사울이 전쟁에서 전사했고, 세 아들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이 사울의 머리와 갑옷을 취하여 갑옷은 자신의 신의 묘에 두었고, 사울의 머리는 다곤의 묘에 매달았습니다. 이처럼 사울의 말로는 좋지를 않았죠. 자신과 세 아들들이 동시에 죽었습니다. 그렇게 겸손하던 사람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13=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왕이 되고 나서 권세의 맛을 보고는 사람 자체가 점점 변질되어 갔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을 버리고, 무당을 찾았습니다. 심지어 악신에 붙잡혀 시달리기도 하였습니다. 교만하여져 겸손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아들들과 전쟁에 나갔다가 모두 전사하는 불행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편 본문에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선한 일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에게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11-12= “길르앗 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사람의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 아들들의 시체를 취하여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곳 상수리나무 아래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일을 금식하였더라.”

사울이 왕으로 즉위한 얼마 후에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하자 야베스 사람들이 항복하고, 그를 섬기기로 하였는데 나하스는 야베스 사람들의 오른 눈을 빼라고 하죠. 너무나도 암담한 상황에서 사울에게 기별하자 사울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암몬을 격파하고, 길르앗 야베스를 구해주었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가 4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사울이 전사하자 용사들을 동원하여 사울의 시신을 수습한 거죠. 결국 야베스 사람들은 40년 전에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한 겁니다. 나중에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축복하죠. 동시에 선행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몇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1> 받은 은혜에는 보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고쳐주셨죠. 예수님께서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셨는데요. 이것은 율법을 어기는 행동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결한 것을 좋아하죠. 아무 것에나,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됩니다. 더구나 문둥병자에게는 절대로 손대면 안 되죠.

문둥병자와 접촉하면 성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율법에서는 문동병자와의 접촉을 금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손을 대셨죠. 불이익이 생길 수 있습니다.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의치 않으셨죠.

그리고 “손을 대었다.”는 말을 보면 옮을까봐 손가락을 살짝 댄 것이 아닙니다. “손을 댔다.”는 말은 “헤프사토”라고 하는데요. “손을 꽉 쥐었다, 꽉 붙잡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손을 어루만진다.”는 뜻도 있습니다. 문자대로 해석해보면 “상처를 어루만졌다, 아픈 곳을 고루고루 만져주었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말씀으로 고쳐줄 수도 있습니다. 손을 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만짐으로, 접촉을 통해서 문둥병자의 고독과 감정까지 치료해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되겠어요?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에게 고침을 받았는데 그 중에 한 사람만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와서 감사했습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도리죠. 이 한 사람만 돌아와서 감사했을 때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2>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사울이 죽은 것은 범죄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를 죽이시고, 다윗에게 나라를 돌리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왕으로 세우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지위를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주는 거죠.

사도행전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행13:21-22=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40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여기에서 명심할 것은 “내 마음”, “내 뜻”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주권행사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주권행사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은 폐하시고, 마음에 합한 사람은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욥이 받은 갑절의 축복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주신 자도 여호와이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이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고, 따랐을 때 갑절의 축복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욥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잊고 살아야 할 것이 있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은혜는 마음에 새기고, 보답을 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기억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이런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