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25:14-24
본문은 유다의 제9대왕 아마샤에 대한 말씀입니다.
대하25:2=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
아마샤는 어떤 왕이었습니까?
1>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였습니다.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
왕하14: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니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다 행하였더라.”
무엇을 알 수 있죠?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정직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정직한 사람은 드물다는 거죠.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을 받으려면 다윗처럼 전심으로 정직하게 살아야 하죠. 끝까지 정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2>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왕하14:4=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산당을 헐지 않았습니다.
대하25:14=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하더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우상을 섬길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하25:27= “아마샤가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아마샤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니까 하나님께서도 아마샤를 바로 버리신 것입니다. 아마샤는 25세에 왕이 되었고, 29년을 치리하다가 죽었으니 54세에 죽었습니다. 단명하였죠. 끝까지 정직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우상을 섬기다가 그 말로가 아주 비참하였습니다.
3>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대하25:15=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나아가 가로되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대하25:16= “선지자가 말할 때에 왕이 이르되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선지자가 그치며 가로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사람이 변하니까 선지자가 무서운 줄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에게 “맞을래? 그 입 다물어!” 이렇게 막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잘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모독하는데 잘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왕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교만해진 것입니다. 아마샤는 두 번의 전쟁을 했는데요. 에돔과의 전쟁에서는 대승을 하였습니다. 그런 후에 교만하게 되고, 선지자를 무시하자 두 번째의 전쟁에서는 대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만하면 약이 없죠. 바로 징계를 받게 됩니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와 백두산에 사는 호랑이 중에 누가 교만할까요?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가 더 교만하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넓은 세상을 다니면서 이 세상에는 자기보다 크고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우물 안의 개구리는 천상천하에 자기가 제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교만의 극치를 달린다고 하죠. 누가 와서 황소가 크다고 하니까 개구리는 황소와 자기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서 배에다 바람을 잔뜩 집어넣다가 배가 터져서 죽었다고 하죠. 교만하면 약이 없습니다.
“지식은 반지름이다.”라는 말이 있죠. 지식이 원의 반지름이라면 그 반지름만한 원둘레가 우리의 지식이 닿지 않는 무지의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cm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그 지식의 분량만큼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다는 말이죠. 만약 어떤 사람의 지식이 1m 정도라면 그는 자신의 지식이 1cm 때보다 더욱더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결국 많이 아는 사람이 자신이야말로 무지하다는 것을 많이 깨닫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겸손해야죠. 알수록 고개를 숙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앞세우고 살아야 합니다.
수학에서 0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앞에 1이 있으면 숫자는 커지죠. 0을 우리라고 보고, 1을 하나님으로 본다면 1앞에 0은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죠. 그러나 1뒤로 0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숫자는 큽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앞서면 안 되고,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승리한 다음에는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된 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