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2:11-20

1장에서는 느헤미야의 기도가 나오고, 2장 전반부에는 느헤미야가 계획을 세우고, 2장 후반부에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데 느헤미야는 사람들을 움직여 그 일을 해내죠. 오늘 본문에서는 느헤미야가 어떻게 그 일을 해 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죠?

1>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도 추진하였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누구죠? 산발랏과 도비야가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산발랏은 사마리아의 통치자이고, 도비야는 암몬 사람의 지도자인데요.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입니다. 다 같은 혈통의 사람들이죠. 그런데 느헤미야를 반대하였습니다. 그런다고 포기하면 될까요? 하나님의 일은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도 해야죠. 느헤미야는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도 추진하였습니다.

2> 느헤미야는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반대를 억지로 꺾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억지로 꺾으면 부작용이 나죠. 11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3일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3일간 무엇을 했을까요? 네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휴식을 취했을 것입니다. 그는 장거리 여행을 했죠. 아마도 낙타를 타고 왔을 텐데요. 요즘처럼 비행기나 기차 같은 것이 없잖아요. 900마일이 넘는 거리를 왔기에 피곤했을 겁니다.

둘째,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잖아요. 아마도 3일 동안 기도로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셋째, 전략을 검토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 심사숙고했겠죠. 그러면서 느헤미야는 적당한 때를 기다렸습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때와 시간을 맞추어야죠.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도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시며 때를 기다리셨는데요. 느헤미야도 신중히 행동하였습니다.

넷째, 진상을 조사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조사했는데요. 12절을 보면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쌔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그것도 언제 하였습니까? 밤에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란을 피우지 않기 위해서죠. 그런데 느헤미야가 왜 이렇게 조용히 했을까요? 반대와 방해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3> 느헤미야는 공동체 의식을 가졌습니다.

17=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우리의 당한 곤경”이라고 하죠. 이렇게 느헤미야는 유다 사람들과 일체감, 하나임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니까 아주 형편없네요. 여러분은 다 실패자들입니다. 이게 뭡니까? 그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17절을 보면 “우리의 당한 곤경”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포함하여 책임을 같이 졌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인품이죠. 사람 됨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말하고 있죠.

어떤 사람이 자신의 왼쪽 발을 잘라내려고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깜짝 놀라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소?”라고 물으니까 “보면 모르시오! 왼쪽을 잘라내려고 하고 있소이다.” “왜 그러세요?”라고 이유를 물으니까 “내가 왼쪽 발에게 그렇게 주의를 주었건만 오늘 또 오른쪽 발을 밟지 않았겠소! 오른쪽 발이 화가 나서 내게 말했지요. 못된 왼쪽을 좀 잘라달라고요. 그런데 나는 오른쪽하고만 친하거든요. 그래서 버르장머리 없는 왼쪽을 잘라내려고 그러는 겁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은 미친 사람이죠. 오른쪽을 밝았기로 어떻게 왼쪽을 잘라내려고 합니까? 왼쪽 발도 자기 몸의 일부가 아닙니까? 우리가 무의식중에 혀를 씹을 때가 있죠. 이가 실수를 좀 했다고 이를 빼내면 되겠어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등을 돌리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코와 눈이 서로 비쭉거리더니 싸우게 되었습니다. 코가 눈에게 “너는 쑥 들어가 볼품이 없어. 얼굴이 예쁜 것은 내가 오뚝하게 나와 있기 때문이야.” 그러자 눈이 “뭐, 내 눈이 볼품이 없다고? 그렇다면 너 한번 당해볼래?” 화가 난 눈이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자 넘어져서 코가 깨지고 말았답니다. 여러분, 이렇게 서로 싸우면 될까요? 누가 상하게 되죠? 서로 상하는 겁니다. 우리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4> 문제의 심각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7=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였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는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느헤미야는 사람들의 자존심에 호소하죠. 성을 재건해서 수치를 당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재건하자고 합니다. 유다가 수치를 당한 것은 그들만의 수치가 아니죠. 그들이 믿는 하나님까지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누가 욕을 먹어요? 성도가 잘못하면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게 되죠.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위해서 성을 재건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거죠. 하나님 중심으로 교회를 잘 섬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