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7:1-7

느헤미야서는 두 파트로 구분되는데요. 1-6장은 성벽을 건축하는 내용이고, 7-13장은 나라를 강화하는 내용입니다. 대개 지도자의 스타일도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개척자형과 관리자형이 있습니다. 개척자는 일을 설계하고, 추진하고, 일을 만들어가는 타입이죠. 그러나 관리형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발전시키고, 잘 관리하는 스타일입니다. 성경에서 개척자형은 바울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디모데, 디도에게 교회를 맡겨 목회하게 하죠. 반면에 디모데나 디도는 관리자형입니다.

딛1: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그런데 한 사람이 두 가지를 다 잘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둘 다 잘하는 사람이었죠. 6장까지는 개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7장부터는 관리자로서의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관리자로서 느헤미야가 어떤 일을 했습니까?

1> 일군들을 세웠습니다.

1= “성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세 종류의 지도자를 임명하는데요.

첫째, 문지기였습니다. 요새 말로 하면 경호원들이죠. 예루살렘의 치안을 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노래하는 자들을 세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는 대단히 중요하고, 찬양대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 레위인들을 세웠습니다. 이들은 제사장을 돕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2절에서는 또 다른 지도자들을 세우는데요.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느헤미야는 동생을 예루살렘의 시장으로, 하나냐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고, 물론 자신은 총독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죠. 그런데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을 세웠습니까?

2=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세우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세웠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일군이 되면 그 교회와 단체는 바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되는데요.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죠. 그러면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느헤미야가 동생을 지도자로 세웠는데요. 동생 하나니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장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페르시아까지 와서 성이 무너지고, 황폐하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입니다. 만약에 하나니가 없었더라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느헤미야서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만큼 하나니도 훌륭한 사람이죠. 느헤미야는 아무나 세우지 않고 충성된 사람을 검증하고 세웠습니다.

2> 중요한 것을 기록으로 보존하였습니다.

무엇을 기록으로 남겼습니까?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죠. 왜 이들의 이름을 기록하였을까요? 느헤미야서에는 족보가 세 번 나오는데요. 7장, 11장, 12장입니다. 왜 세 번이나 족보를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첫째,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했죠. 예루살렘이 망하고, 포로로 잡혀갔다가 70년 후에는 돌아오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언대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리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죠.

둘째, 황폐한 조국으로 믿음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외국에서 70년 동안 살았는데요. 그곳의 생활이 익숙하지만 조국을 사랑하여 믿음으로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셋째, 성을 재건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일에 동참한 자들을 격려하면서 그 이름들이 사람들에게 기억되도록 한 겁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보상하실 것입니다.

넷째, 경제적으로 헌신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70-73절을 보면 사람들이 드린 헌금 액수를 말씀하고 있는데요. 당시는 어려울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엄청난 헌금이 모아졌죠. 모두가 최선을 다하여 헌신한 것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그런 가운데서 성벽재건과 성전보수에 헌신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이름들을 기록하고 대대로 기억하게 하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기억해도 좋은 이름으로 기억되어야죠. 가룟 유다보다는 베드로나 바울이 좋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의 이름도 좋게 기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