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9:1-4, 10:1-3

8:9= “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무릇 모르드개의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일백 이십칠도 유다인과 대신과 방백과 관원에게 전할쌔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과 유다인의 문자와 방언대로 쓰되”

원래 하만이 유다인들을 죽이라는 조서를 내린 것은 정월 13일이었는데 2개월 10일 만에 조서가 새롭게 바뀌죠. 삼월 23일에 새로운 조서가 내려졌습니다. 유다인들을 치려는 자들을 멸하라는 거죠.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라는 조서입니다. 언제 그렇게 하라고 하죠? 하만이 유다인들을 멸하기로 한 날입니다. 그 12월 13일이 오자 어떤 일이 일어나죠?

1-2=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은 왕의 조명을 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그 날에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 각 읍에 모여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완전히 전화위복이 되었죠. 기가 막히는 일들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유다인들의 대적들을 죽이고, 무엇보다도 하만의 열 아들을 죽입니다. 그것도 시체를 나무에 달았죠. 하만의 열 아들을 왜 이렇게 하였을까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만의 열 아들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어떻게 하든지 유대인들을 없애려고 하는 반유대주의운동에 앞장을 섰던 주동자들이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만의 10 아들을 처형했던 것입니다. 완전히 하만의 집이 멸망한 거죠. 또한 대적들이 얼마나 죽었습니까? 수산 성에서 800명이 죽임을 당하고, 전국에서 7만 5천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6=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인을 죽이고 멸하고”

15=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인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16= “왕의 각 도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를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인을 도륙하되”

그러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하죠. 8장 11절을 보면 왕이 재산도 탈취하라고 했는데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대적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창14장을 보면 롯의 가족이 포로로 잡혀가고, 재산도 모두 탈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약탈자들을 이기고, 조카와 가족, 잃었던 재산을 찾아왔는데요. 그때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탈취물을 모두 가지라고 했는데요. 아브라함이 어떻게 합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창14:22-23= “아브람이 소돔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의 인품을 보여주죠. 모르드개 당시에도 유다인들을 죽이려던 하만과 그 패거리들은 아마도 권세가 있는 고관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재산이 많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유다인들은 재물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였습니다.

26=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좇아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27= “뜻을 정하고, 자기와 자손과 자기와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한 정기에 이 두 날을 연하여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부림절을 지키기로 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날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띄우셨나이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있습니까?

시30:12=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영원히 감사해야죠.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부림이 없습니까? 죄로 죽을 사람이 영생을 얻은 것이 부림이죠. 완전히 망할 줄 알았는데 일어났다면 이것도 부림입니다. 완전히 문이 닫힌 줄 알았는데 문이 열렸다면 이것도 부림이죠.

10장을 보면 죽었어야 하는 모르드개가 왕 다음이 되고, 백성에게 존경을 받고, 모든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모르드개가 정치적인 야망이나 경제적인 야망을 품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죠. 하만을 숭배할 수 없다는 신앙을 지키려고 하다가 이렇게 전화위복이 된 것 아닙니까?

믿음을 바로 지키려고 할 때 어려운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나, 에스더처럼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