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4:1-8

위기를 당했을 때 믿음이 깊지 못한 사람은 바닥이 드러나죠. 반면에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평소에는 잘 몰라도 유사시에는 신앙의 깊이가 입증되죠. 시3편과 시4편은 압살롬의 반역을 배경으로 쓰인 시인데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기가 막히죠. 아들이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반역을 일으켰고, 아들로부터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도망을 칠 때 보통 사람 같으면 분노, 원통, 이런 것들이 마음을 짓누르겠죠. 그러나 다윗은 믿음이 있어서 그런 환경에서 누구만 바라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죠.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었을까요?

1> 기도의 응답을 믿기 때문입니다.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이런 기도를 드릴 때 다윗의 주변은 복잡했지만 다윗의 시선은 주위환경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였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기도하여 응답받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죠. 그래서 5절을 보면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죠.

여러분, 어려울 때 함께하는 이웃이 있다든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면 이웃이나, 동료나, 그 누구보다도 더 좋은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십니다.

마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애3:22-23=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3=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거죠. 그래서 다윗은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숫자가 많으면 하나님보다 우세할 것처럼 느낄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사람은 없죠. 그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크기 때문이죠.

3>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하박국도 유다가 당할 고난을 보았을 때 만감이 교차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악한 세력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기쁨이 생겼죠. 하박국은 합3:17-19에서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어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환경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초월해서 오는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쁨이죠. 하나님께서 이런 기쁨을 우리에게도 주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어떤 자에게 이런 평안을 주실까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주십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죠.

잠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바울도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렇죠. 하나님이 우리 편이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첫째, 육체적인 욕구인데요. 안락함, 따스함, 의식주에 대한 욕구입니다. 둘째, 안전의 욕구가 있습니다. 좋은 환경에 살고 싶은 욕구죠. 셋째, 사회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감정을 나누고, 서로를 용납하거나, 수용되고 싶은 욕구죠. 넷째, 자존감의 욕구도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죠. 다섯째, 성취의 욕구가 있습니다. 목표를 이루고 싶은 욕구죠.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여섯째, 영적인 욕구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려는 마음,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죠.

그런데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사해 바다가 있죠. 염도가 높아서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들어갈 때 안전 수칙이 있죠. 바다에서 헤엄을 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력이 높아서 저절로 몸이 떠서 안전하지만 빠질까 봐 걱정하여 몸에 힘을 주면 오히려 몸의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닷물이 눈에 들어가게 되는데 사해 물은 다량의 광물질이 있어서 눈에 들어가면 몹시 쓰리고, 아픕니다. 괜히 수영한다고 첨벙거리다가는 자신이나 옆 사람이 해를 입을 수 있죠. 그래서 안전 수칙은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기고, 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안전 법칙이 있는데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안전과 평안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