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3:1-10
욥1-2장은 인내하는 욥에 대하여 말씀하고, 3장부터는 인내하지 못하는 욥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첫째는 욥의 두 가지 모습을 이해해야 하고, 두 번째는 이렇게 표현한 것은 기록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 목적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고난의 때에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상황을 하나님께 고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시련이 왔을 때 첫 번째 욥처럼 인내하고, 두 번째의 욥처럼 속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3장을 보면 욥의 탄식이 나오죠. 여기의 탄식을 영어로는 “Lament”라고 하는데 “애가”라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Lament에는 지적이고, 사색적인 Lament가 있고, 존재론적인 경험에 의한 Lament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애가는 사색적인 것이 아니라, 체험에서 나오는 즉각적인 반응입니다.
시편에도 보면 Lament가 많이 나오는데요. 분석을 해보면 종류는 다양하게 나타나죠. Lament to God=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 있고, Lament to Self= 자신에게 탄식하는 것이 있고, Lament to Others= 남들을 향한 탄식이 있죠. 아무튼 3장에는 욥의 탄식(Lament)이 나오는데요.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였고, 내 눈으로 환난을 보지 않도록 하지 아니하였음이로구나”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이런 탄식들은 자신을 향한 탄식입니다.
20= “어찌하여 곤고한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탄식을 표현하고 있죠. 자신이 체험함으로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아픔을 경험함으로 부르짖는 탄식이죠. 어제도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욥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탄식하는 것도 조금은 있 지만 주로 하나님을 향하여 탄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욥기는 욥과 친구들의 대화가 주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 하나님을 향한 탄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어려움과 고난, 환난이 있을 때 우리는 누구에게 상황이나 속사정을 아뢰어야 할까요? 하나님께 아뢰어야 하는 것입니다. 욥기의 구성이 그렇죠. 욥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first)이고, 욥과 친구들과의 관계는 다음(secondary)입니다.
결론도 그렇습니다. 친구들의 변론이 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이 최종적이고,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친구들이 옳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깨달은 욥에게는 복을 주셨습니다.
아무튼 3장부터는 다른 모습의 욥을 보는데요.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죠. “왜 내가 태어나서 이런 꼴을 당하는가?” 그러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알 수 있죠. 욥은 낮과 밤을 저주하고, 죽기를 바라고, “어찌하여”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인간의 모습이죠. 그때 친구들이 말합니다.
욥4: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네가 고난받는 것은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네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보니 뭔가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니 그 죄를 빨리 찾아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죄를 범하여 이런 재난을 당한 것이 아니었죠. 그런데 친구들은 고난의 이유를 모르면서 욥에게 닦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욥은 세상 말로 환장할 지경입니다. 친구들이 위로는커녕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죠.
이런 욥의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어떠하였습니까?
1> 하나님께서 욥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욥42: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욥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친구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셨죠. 그러므로 욥의 친구들처럼 남을 잘 모르고, 정죄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함부로 남을 평가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2> 인간의 한계를 알라고 하십니다.
욥도 물론 다 잘한 것이 아니죠. 욥이 모든 것에 칭찬을 받았습니까? 그렇지는 않죠. 욥38-41장을 보면 욥은 친구들보다는 정당하였지만 욥이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죠.
욥기를 보면 욥의 불평이 100번 이상 나옵니다. “언제까지, 어찌하여” 이런 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후”의 입을 통하여 욥의 잘못을 말씀하셨습니다.
욥32:2=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함이요.”
욥33:13= “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 네가 하나님과 변쟁함은 어찜이뇨?”
욥도 의로웠지만 사람이었고,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힘든 고난을 통과한 다음에 무엇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욥42:1-6을 보면 욥은 귀로만 듣고, 알던 하나님을 이제는 눈으로 보고, 체험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회개하였죠. 여러분, 우리도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인 줄 알고,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을 통하여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무지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생사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욥의 신앙을 본받아 환난을 이기고, 하나님의 도움과 인정과 칭찬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