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6:1-15
대상6장은 제사장족보인데요. 우리는 제사장들의 족보를 보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1> 제사장들을 통하여 누리는 축복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15=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의 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옮기실 때에 여호사닥도 갔었더라.”
대상6장에는 레위로 시작해서 첫 번째 대제사장이 되었던 아론과 그 직분을 승계했던 엘르아살, 그리고 엘르아살의 뒤를 이은 대제사장들, 그리고 유다의 마지막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사닥까지 제사장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7-8절은 11-12절과 같은 이름들이 나오는데 동명이인인지? 중복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족보에는 의롭고, 충성스러운 제사장들도 있고, 악하고, 불충한 제사장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49-53절에 보면 또 하나의 제사장 족보가 나오는데요. 왜 같은 이름을 두 번이나 반복했을까요? 그것은 제사장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했던 모범적인 시대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죠.
첫 대제사장 아론으로부터 영적인 전성기였던 다윗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제사장들만 따로 언급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이라도 다 같은 제사장이 아니라는 거죠. 아무튼 바른 제사장들과 함께 바른 제사를 드리게 되는 것은 축복이죠. 이것이 정말 귀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충성스러운 일군들 덕분에 누리는 은혜를 감사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6-30절에는 레위자손으로서 제사장이 아닌 사람들의 계보가 있는데요. 이들은 성전의 일을 맡았던 레위의 세 아들인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게르손 자손은 성막의 기구들을 관리했고, 그핫 자손은 성막의 줄과 천을 관리하였고,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기둥과 널판을 책임졌습니다.
31-48절은 성전에서 찬양하는 직분을 맡았던 사람들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찬양대를 맡은 사람들이죠. 찬양대장으로는 헤만, 아삽, 에단인데 이들은 시편을 지은 자들이죠. 헤만은 88편, 에단은 89편, 아삽은 50편, 73-83편을 썼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 사람들이 찬양의 직분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감당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48= “저희의 형제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 장막의 모든 일을 맡았더라.”
이 사람들의 봉사로 백성들은 평안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습니다. 섬기는 분들이 있기에 예배를 드릴 수 있죠. 아무도 섬기지 않으면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겠어요?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한 끼에 200그램씩 지급되는 시커먼 빵을 먹으면서 옛날 배부르게 먹던 시절을 되새기면서 후회를 합니다. 한 끼에 구운 감자를 몇 개씩, 야채를 듬뿍 넣은 죽을 몇 그릇씩, 고깃덩어리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우유는 배가 터지도록 마셨던 시절을 상기하면서 음식은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한 조각의 검은 빵이라도 한입, 한입 빵을 씹는 이 순간을 음미하면서 옛날 풍성한 음식을 먹을 때에도 이렇게 맛을 음미하고 먹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후회를 하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누리는 교회생활, 예배생활,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감사하며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없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예배를 드릴 수 없었을 때 얼마나 안타까워했습니까?
시84편은 성전을 사모하는 시인데요.
1=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5=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왜 그럴까요? 성전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기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성전에 나갈 수 있는 사람,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힘을 얻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성전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유대백성들이 성전을 얼마나 그리워했습니까? 시137편을 보면 유대인들이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온 다음에 그 때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포로생활을 회상하며 지은 시죠.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학자들은 강 주변에 이스라엘 포로들을 집단으로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했다고 하죠. 포로로 끌려가서 서러운 생활을 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을 생각하고, 슬프게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언제든지 교회에 나올 수 있고, 언제든지 기도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까 정말로 복을 받은 사람들이죠. 그런데 억지로 교회를 나와 주고, 직분을 맡았으니 억지로 봉사하는 흉내를 내고, 헌금도 어쩔 수 없이 내는 것이 되어서야 되겠어요? 정말로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정말 후회하게 되겠죠. 북한이나, 이슬람국가나, 가난한 나라에 산다면 우리가 누리는 신앙생활을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축복이고, 은혜인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성회로 모이는 것, 교회에서 교우들과 함께 섬기는 것, 이런 것들을 누리고 있는 것이 축복인줄 알고, 감사함으로 섬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